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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Jan 26. 2021

수의 일기


무미건조하다.


삶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을 만큼.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어서서 땅을 딛으면 다리 근육이 쭉 땡기는 게 우습기까지 하다. 몸이 마른 오징어처럼 되어가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걷지도 못하는 거 아니야? 겁은 많아서 극단적이고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아른거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활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일을 구하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성실하게 운동하고 뭐 그런 삶 말이다. 그냥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것이다. 연초가 될 때마다 새롭게 삶을 다짐하고, 다시 시작하는 월요일에, 혹은 아침에 결심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미 체념하고 말았다. 이런 내가 싫으면서도 또 '어쩔 수가 없다' 나를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타협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기대치의 절반 이하밖에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인생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1999년 12월 12일, 수의 일기 中






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걸까. 나는 수를 배웅할 때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현관 쪽으로 머리를 해두고 자는 나를 언제나 수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잤다가는 저승사자가 와서 너를 데려가는 수가 있어. 그때마다 나는 비웃었다. 그날 수는 밑창이 닳은 털장화를 신고 나갔다. 어떤 얼굴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수의 작은 발이 털장화에 꾸깃하게 들어가는 것만 가만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왜 그때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는 돌아올 거였으니까. 어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수는 항상 여덟 시면 집으로 돌아왔다. 수가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그렇듯 집앞 건널목 포장마차에서 붕어빵 하나를 사와서 머리는 나를 주고, 꼬리는 자신이 먹을 것이다.



오늘은 두 개 사와.



수의 종아리에 대고 내가 말했다. 그래. 수가 대답했다.



구질구질한 삶이 싫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만 쓰면서 평생 먹고 살겠다느니 그런 말은 기만이라고, 대학 시절 나와 수는 말했으나 우리의 꿈은 결국 하나였다. 글만 쓰고 싶다. 글을 쓸 때는 지독하게 슬퍼서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댔으면서, 뭐가 좋다고 서로가 읽어줄 때는 볼이 그렇게 발그레했던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머리로는 너무 잘 알았다. 애초에 글만 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재능 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사는 거라고 수의 어머니는 말했다. 수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빌린 날이었다. 수의 어머니는 수에게 갚지 않아도 되니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돈이 도대체 뭐기에 가족의 연을 끊어요. 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내가 도리어 수의 어머니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수의 어머니는 냉정했다. 그러는 너희는 글이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니?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핑계가 필요했던 게야. 숭고한 예술가인 척 남은 가족들의 등골을 빼먹으려는 게지. 수의 어머니의 말은 하나하나가 주옥 같았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막노동 현장에 나갔다. 빙판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꼬리뼈를 다쳤고 그 바람에 막노동은커녕 훨씬 돈이 나가게 되었다. 뭘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냐. 나는 쓰레기다. 우는 내게 수가 말했다. 아니야, 넌 쓰레기가 아니야. 넌 작가야.



필요했다. 글이라는 게 절실하게 필요했다. 내게 글은 단순히 글이 아니었다. 이런 말 또한 숭고한 예술가인 척하는 걸까? 하지만 이 티끌만도 못한 재주조차 내게 없다고 생각하면 내 삶에 남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잖아, 수. 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게 글을 빼고 무엇이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끝끝내 수도 말하지 못했다.



수는 한참 현관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리맡 쪽에 선 수를 흘끔 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이 시렸다. 날이 건조해서였을까. 그 계절에는 조금만 눈을 뜨고 있어도 시려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가 나가고, 열쇠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이 집에 갇혀버렸구나. 그 언젠가 기형도가 말한 것처럼, 아!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히고 말았구나. 돌아누워서 서럽게 펑펑 울었다. 그날 저녁 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느냐고 물으면, 수는 말했다. 칭찬받는 게 좋아서. 어릴 적 수의 어머니는 수가 글을 참 잘 쓴다며 자주 칭찬해주셨다고 했다. 공부도, 운동도, 피아노도. 그 어느 분야에서도 칭찬을 듣지 못했던 수는 어머니의 칭찬을 듣고 글을 더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손 대기만 하면 욕 먹는 일은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느냐고 꾸중을 들어도 그때 그 단 한마디, "참 잘 썼구나." 이 말이 너무 애틋해서 놓을 수가 없었다. 수가 너는? 하고 되물으면 나도 그래. 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썼다. 그 잘난 계기 하나 없이 눈 뜨면 노트 한구석에 무어라 끄적이고 있었다. 내 중얼거림이, 혼자 쓸쓸하게 내뱉는 이 말이 누군가와 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멋드러진 변명을 위해 사실 했던 게 아니라 해서 붙인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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