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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Feb 02. 2021

다시 사랑한다면


  그래,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다시 사용하는 게 맞겠지.

  뭐든지 함부로 버리는 건 낭비잖아.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잘 생각해보면 정말 그게 낭비일까? 어쩌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내가 그걸 안고 있는 게 오히려 그것에게도 나에게도 해는 아닐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봤어?

  리싸이클이라, 말 좋지. 리, 싸이클, 이니까. 원을 그리면서 도는, 그런 모양을 말하는 거 아니야.

  근데 그렇게 원을 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누군가는 원을 끊어내야 하는 거잖아. 누군가는 끊어내야 하는데 지금 끊어내지 않아서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지저분하고 난잡하게 살고 있는 거 아니냐고.


  대답해. 대답해!


  아,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머리가 울린다. 선주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그저 집 앞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뿐이다. 아내의 이런 신경질적인 면에는 넌덜머리가 난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정말 나쁜 남편처럼 들리겠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아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퇴근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설거지와 청소를 도왔고, 널린 세탁물을 걷어 빨래를 개고 아이와 놀아주고 잠을 재웠다. 대한민국의 가장이라면 으레 그러하지 않는가. 요즘 같은 시대에 맞벌이도 아니고 외벌이로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내 피로를 아내는 도무지 알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내게 별것도 아닌 일들로 대답을 강요했다.


  한 번은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뒤에서 된장찌개 냄새를 한 번 맡았다가 무슨 짓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두부를 써느라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두부를 들고 있었다. 조각나다가 별안간 손에 으스러진 두부가 과장되게 느껴졌다. 왜 그래, 칼 들고 무섭게. 내 말에 아내는 두부를 도마 위에 으스러지게 짓뭉개더니 소리쳤다.


  생각해봐. 칼을 쥐고 있는 건 당신이잖아.

  그래. 내가 당신이 무서운 이유가 그거야, 칼을 쥐고 있다는 거. 언제든 칼을 쥐고 있어, 당신은.

  그런데 그걸로 썰어야 할 건 안 썰고 득달같이 나한테 달려들어서 나만 잡아먹으려고 하지. 당신이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단 하나도 내게는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야.


  밖에서는 점잖고 상냥하고 성실한 척 고상한 척 위선을 다 떨면서 집구석에 들어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이렇게 나를 미친 사람 만드는 것뿐이지. 그런데 지금 한다는 소리가 뭐? 뭐라고?

  칼 들고 무섭게? 무서워?

  이딴 걸 들고 있어서 무서워? 난 당신이 더 무서워.


  왜 말이 없어? 대답해! 대답하라고!


  아내는 정상이 아니었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혼자서 몸을 벌벌 떨면서 신 들린 사람처럼 우르르르 말을 쏟아냈다. 나는 그 앞에서 힘 없는 고라니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산사태에 목숨을 잃은 가여운 고라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지,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맹세코 아내를 때린 적도 위협한 적도 없다. 속에 천불이 나도 아내에겐 손찌검하지 않았다. 대신 애꿏은 벽을 치는 바람에 이웃이 무슨 일이냐고 한 번 찾아온 적은 있었다. 이웃이 찾아와준 덕에 우리의 싸움은 완만하게 해결되었고 그날 나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라도 그 일 때문에 나를 이렇게 들들 볶는 거라면, 아내가 이렇게 뒤끝이 긴 사람이었나 싶다.


정말이지, 나는 다시 사랑한다면 저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신께 맹세한다. 사랑이 죄다! 죄!


* 제목 '다시 사랑한다면'은 가수 도원경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 새벽에 쓴 글이라 오타가 많았네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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