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코스프레 관두겠습니다

12-2. 꾸며낸 모습 아닌 진짜 내 모습으로

by 지지

모텔 사건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나에게 M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시시껄렁한 말을 건넸다. 그 태도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곧장 그를 차단했다. 카톡도, 인스타도. 그리고 다른 조교 지인에게 약속을 잡아, 마음껏 그에 대한 험담을 쏟아냈다. 나의 상실감과 자괴감을 들은 그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도 기대한 게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나는 그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쩌면 어느 정도 연인처럼 굴었을지도 모른다. 놀이공원에 놀러가서 함께 놀이기구를 타고 맛있는 걸 먹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경복궁에 가서는 한복을 커플처럼 맞춰입고 인생네컷도 찍었다. 내 딴에는 사진 찍어주겠다는 타인의 말을 거절한 게 미안해서 찍자고 한 것이었는데, 이건 썸 아니면 있을 수 없다며 누군가 극대노하기도 했다. 내가 여지를 준 게 분명했을 것이다.


변명하자면 나는 그가 사진을 찍어주는 게 좋았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찍어주지도 찍지도 않고, 엄마는 파킨슨병 때문에 손이 떨려 내 사진을 찍어줄 수 없다. 놀러가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찍어주는 친구는 M밖에 없었다. 불쑥 놀이공원에 가자고 마음놓고 제안했을 때 한가하고(마침 M은 논문을 다 써서 쉬고 있었다), 건강하고, 무엇보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M밖에 없었다.


나름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마무리가 이렇게 되고 나니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애초에 '이성'과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안일한 접근을 한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왜? 아니 무슨 남자가 진짜 짐승도 아니고 똑같은 사람인데 이성이랑만 얽히면 도대체 왜 사랑 아니면 우정으로밖에 귀결이 못 된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길을 잃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비난했다. 내 안의 목소리는 틈만 나면 허점을 찾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만큼 가까웠던 이성이 네게 또 있었냐?” “그렇게까지 네 장애를 자연스럽게 배려한 남자가 또 있었냐?” 없었다. 같은 시기 대학원 조교 때 같이 심부름을 가던 남자 조교에게 중심을 잡기 위해 계단 앞에서 "잠시 어깨 좀 잡을게요"라고 말하자 그는 "으으, 느낌이 이상해요" 같은 말이나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친구들이 “M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할 때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 장애를 알고도 내게 호감을 보인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마음을 열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내게 호감을 보여줬던 남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균형 잡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더 힘들어져 '비장애인 코스프레'가 어려워지고 있던 찰나였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나는 그를 통해 작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내 장애를 자연스럽게 배려해주는 사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을 어쩌면 나도...


예전에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말한 지인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는 말을 바꿨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좀 그렇다고 하네.” 그 말이 이상하지 않았다. 속상하지도 않았다. 장애가 있다는 건 누가 들어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걸 안다. 실제로 많은 소개는 그렇게 흘러갔다. 나를 보기도 전에, 이미 조건에서 제외되는 일.


언니는 언젠가 말했다. "글이나 전해지는 말로 네가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직접 보여지고, 그렇게 천천히 너를 알아가는 사람이 널 사랑하면 좋을 것 같아." 이상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내 인생에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M의 일 이후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못생겨보였다. 내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대로는 절대 사랑받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는 공상을 했다. 어딘가 다른 행성에는 사실 나 같은 장애인들이 가득해서 내가 평범해지고, 사랑받는 일도 평범해지는 그런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 그런 안전한 공상을 하다 보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 생에서는 답이 없구나.


내 병을 갖고도, 내 장애를 갖고도 혹은 훨씬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복에 겹고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이렇게 우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한다.

장애인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소비되는 방식.


지난 가을, 유명 장애인 유튜버와 걸그룹 출신의 가수가 결혼했다. 가족이 축사를 하며 배변 실수에 대해 언급하자 사람들은 “여자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또 어떤 기사에서는 팔다리가 없는 장애 여성과 결혼한 남성이 소개됐다. 댓글에는 “저 남자, 분명 페티쉬 있다”는 말이 넘쳐났다. 어떤 변태적인 성욕이 있지 않고서는 저런 여성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것도 회의적으로 보이는데, 비장애인에게 내 사랑이 축복받는 건 더더욱 어려워 보였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럴싸하게 비장애인처럼 보여야 할 것만 같았다. 장애인이라도 비장애인처럼 다 할 수 있다고 (무엇을? 무엇이든!)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진짜 사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게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지금도 비장애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패배할 때가 많지만 이 싸움은 결국 내가 이기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지금이야 토끼탈처럼 쓰고 벗을 수 있었던 비장애인 코스프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어려워질 테니까. 그러면 나는 좋든 싫든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관둬야 한다. 누구도 나에게 코스프레하라고 직접적으로 강요한 적 없기에 내가 이 코스프레에서 은퇴하더라도 꽃다발을 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 자리엔 그저 나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나를 내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도움, 사랑으로 나는 살아올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비록 초등학생 때 절친이라 믿었던 남자애가 훗날 나를 떠올리며 "아, 그 뒤꿈치로 걷던 애?"라고 일축했어도 나는 그 한마디, "장애"로 다 일축될 수 없는 사람이다. 위대한 쇼맨의 OST, 킬라 세틀의 <This is me> 노래 가사처럼, 나는 빛나는 존재다. 숨으라고,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나를 누르려 해도 절대 나를 가릴 수는 없다. 내 모습 그 자체로 찬란한 이 나를.


나는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용기를 내고 있다.


비장애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비장애인인 척 코스프레하며, 그 코스프레를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던 날이면 나를 탓하던 그 긴 시간들을 이제 나는 놓아주려고 한다.


참 수고 많았어, 지지.


거울 앞에 선 나는 이제 토끼 탈을 벗는다. 땀이 아무리 차도 내 진짜 모습을 보이면 누군가 손가락질할까 두려워 벗지 못했던 그 탈을 벗고 거울을 본다. 땀에 짓눌려 엉망이 된 머리, 눈물이 맺힌 것 같은 눈, 고집스럽기 짝이 없는 앙다문 입술. 초라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맨 눈으로 보는 내 자신이 생경하다. 입을 조금 벌려본다. 웃어본다.


비장애인 코스프레 관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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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비장애인 코스프레 관두겠습니다> 브런치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에필로그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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