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 성을 가진 선한 얼굴의 호주 도자기 예술가
쎄씨 박(Sassy Park). 성이 박 씨잖아! 한국 사람이다!!!!!!!
얼굴도 몰랐던 쎄씨가 미술 공모전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뿌듯했었다. 드디어 한국 사람이 우승했구나!! 하고 나름 자랑스러워했단 말이다.
필자는 호주에서 몇몇 한국인 교민들에게 잘난 척한다고 많이 욕도 먹고.. 또 데이기도 하면서..
바보처럼 또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워한다. 그 이유는 그 이상으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이민사회에서 소수의 도드라진 자존감 낮은 또라이들이 필자를 힘들게 했을 뿐.. 그걸 알면서도 필자는 아, 두 번 다시 한국인 안 엮일 거야!! 하면서도 만나면 괜히 반갑고 또 챙겨주고 싶다. 필자는 항상 이젠 지긋지긋하다며 싫다면서도 역시 뼛속까지 바꿀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필자가 일하는 스튜디오에 어떤 중년의 백인 여자가 찾아왔었다. 금발 머리에 선한 인상 었다.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의 이름이 쎄씨 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응?...
실례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래요? 이름이 쎄씨 박이라고요?
쎄씨는 한국 사람인데..... 분명 한국 사람인데!!!!! 박 씨잖아요. 박 씨!!!!
필자가 진지한 얼굴로 흥분해서 물어보자 쎄씨는 그런 필자를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내가 한국인인 줄 알았겠군요. 모두들 그래요.. 박 씨가 한국에 있는 성씨라고 들었습니다."
필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한국에는 김 씨, 이 씨, 박 씨가 많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가진 성인 파크(Park, 박 씨)는 영국에서 유래되었답니다."
쎄씨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박 씨가 영국 성이라고?! 나중에 필자는 너무 궁금해서 구글에 영국의 박 씨 가족(Park family)의 히스토리에 대해서 검색해보기도 하였다.
당신같이 재능 있으신 분이 한국인이 아니라서 유감스러워요... 쎄씨....
"저도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한국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요!!!!"
그게 쎄씨와 필자의 첫 만남이었다.
시드니 대학교(University of Sydney, Usyd) 졸업 후, 오랜 기간 쎄씨는 호주와 해외의 여러 갤러리들에서 일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다시 호주 국립 미술학교(National Art School, NAS)로 가서 도자기로 최근까지 석사 학위 공부를 다시 했다. 그리고 호주의 다양한 미술 공모전을 휩쓸었다.
그녀는 갤러리에서 일하며 사람들이 좋아하고 구매하게 되는 작품을 접하는 일을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녀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예술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그녀의 확신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거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아이디어, 또 예술가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한다고 한다. 필자 또한 이렇게 글 쓰기를 시작하면서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아티스트로서 발전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필자나 쎄씨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최고의 공부는 다른 사람의 작품관과 세계관에 대해 많이 읽으며 분석하고, 작품을 되도록 많이 보는 것이다.
그녀는 예술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그녀에게 위대한 일이었고, 그녀 자신 스스로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며 그녀 자신이 예술품과의 관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건 참 멋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필자는 작년 연말까지 교수님한테 아주 신랄한 피드백을 받고 이틀 동안 멘탈이 털려서 집에서 누워있었다. 필자는 필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멍청이인 줄 알았었다.
아직 필자에게는 피드백받는 게 그리 멋진 일만은 아니다. 나도 나이 먹으면 쎄씨처럼 쿨해질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가진 장점은 필자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거다. 필자 자체에서 정수기처럼 이물질을 필터링하고 걸러서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냥 못 알아듣겠다고 하고 우기면 그만이다.
그녀는 때론 삶과 예술에 대한 묵상의 시간을 위해 도자기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며 도자기가 가진 광범위한 문화 생산 영역을 이어나가고 있다.
쎄씨는 도자기는 일상의 친밀함을 기념하는데 적합한 매체라고 한다. 쎄씨의 도자기 작품들은 잊힌 추억들을 탐험한다. 과거와 현재의 성격과 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삶의 기반으로 도자기로 만든 인물들(혹은 쎄씨의 추억)과 교류한다고 한다. 즉, 쎄씨에게 도자기에 대한 일상적인 친숙함은 과거의 추억들과 일상의 작은 관찰을 기념하는 완벽한 매체가 된다.
그녀가 도자기로 만든 사람 모습을 보면 표정이 선하다. 실제 쎄씨 얼굴이랑 표정이 딱 저렇다.
역시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묻어 나오나 보다.
그녀의 도자기 인물들의 얼굴은 언더 글레이즈(Underglaze)와 슬립(Slip)이라는 도자기 물감들을 통해서 그려졌는데, 이것은 작품을 보는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더 가까이서 바라보고 대상에 참여하는 공감을 표현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유머를 더해서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쎄씨는 필자에게 본인의 정원에서 직접 딴 딸기를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필자는 진심 감동했었다. 이 글과 상관없는 말이지만.. 호주 딸기는 정말 진짜 너무할 정도로 맛이 없다. 아마 호주 사시는 분들은 지극히 이 의견에 공감하실 것이다.
한국 딸기는 설탕물 발라놓은 것처럼 달기만 한데.. 호주에 살면서 필자는 딸기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였다. 필자는 한국의 딸기 종자를 수입해서 호주에서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이다. 근데, 쎄씨가 준 딸기를 보고 별생각 없이 한 입 입에 넣었는데.. 필자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날 먹은 딸기는 필자가 호주에서 먹은 딸기 중에 가장 달았다. 쎄씨한테 진지하게 딸기 씨앗을 부탁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필자가 쎄씨를 당연스레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유는 위의 사진 속에 있는 저 작품 때문이다. 필자는 쎄씨가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교자상 혹은 한국에서 흔히 쓰는 나무 쟁반 위에 도자기로 만든 인물들과 동물들을 올려놓은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는 진심, 쎄씨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유감스럽다.
어쩌면 조만간 필자와 같은 작업 공간을 쓰게 될 쎄씨.. 그녀의 작품들을 옆에서 지켜볼 생각을 하니 설렌다. 필자에게 항상 따뜻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쎄씨에게 감사한 마음들이 크다. 필자는 앞으로 점점 더 그녀가 인간적으로도, 아티스트로서도 좋아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