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으면서 과제 마무리 중 :)
새로운 전시회 준비를 시작했다. 기존 전시회는 미뤄졌으며, 시드니는 하루에 대략 360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태이기에 아마 더 미뤄질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8월 말에 다시 한번 갤러리와 미팅을 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온라인 전시회를 하나 맡게 되었다. 이틀 전, 갤러리에서 내가 도저히 미팅에서 할 말이 없어서 막말(?)했던 콘셉트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며 그걸로 이번에 온라인 전시회를 하자고 슈퍼바이저가 권유해줬다. 원래 내가 원했던 콘셉트는 다른 거였는데...
원래 원했던 콘셉트는 'Mother' 엄마에 관한 것이었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배운 것들로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두는 전시회였다. 예를 들면.. 내가 선택한 한 아티스트는 형제가 무려 여섯이나 되는 유럽 가정에서 자랐는데, 남자 형제들과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집에서 강요받으면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바느질을 억지로 배우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 그렇게 하기 싫었던 그 일이 지금 그녀의 작품 속에서 아름다운 예술로 페미니즘에 관한 메시지와 함께 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예는 입양 과정에서 만난 진짜 엄마의 이야기를 표현한 예술 작품이었다. 그래서 주변 아티스트 친구들 다 섭외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갤러리에서 채택된 건 엉뚱한 것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여서 설레고 행복하다.
몇 년 전, 논문을 쓰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분노를 했던 적이 있다.
동양적 문화를 의미하는 줄 알았던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한 부정적 의미로서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으로 나눠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에는 서양인이 이상적으로 바라본 동양의 모습에 대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데, 나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양인이 현실적으로 바라본 서양의 모습과 현시대 호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전시회에 담고 싶다. 너무나도 잘 해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동양을 부정적이고 열등한 시각으로 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반박하고 싶다랄까.
동양의 문화와 다민족 국가인 호주의 독특한 문화들이 뒤섞인 우리들은 어쩌면 호미 바바가 언급했던 제3의 공간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문화와 경험들이 뒤섞이며 우리 이민자들은 점점 혼종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필자의 경우는 한국과 호주의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호주에서 살아간 지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호주 사람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이방인의 존재 말이다.
작년에 공부하면서 현타가 왔었다. 그래서 이민자로서의 필자의 위치에 대해 교수님과 상의했다. 논문을 쓰고 작품을 만들 때도 길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앞이 깜깜했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하나..
일단 솔직히 공부가 너무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 문제의 중심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문제였다.
어떤 백인 학생은 본인보다 영어가 부족한 필자와 공부하는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동안 운이 너무 좋아서 진짜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만 만나왔지만 막판에 불쾌하고 유치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당했었다. 샘나서 그러려니 한다! 그땐 진짜 상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언어는 네가 타고난 특권과 재능이 아니라 그저 언어일 뿐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이 우월감을 갖고 뭔가 대단히 착각을 했구나 싶다. 어쨌든.. 필자는 그 학생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래서 자존감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와 두려움은 필자도 심하다. 필자가 유독 예민한 사람이기에 겪었던 문제들이 아니며, 호주 사회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몇 번쯤은 겪거나 거쳐가는 문제들이 아닌가 싶다. 어떤 분들은 본인들은 호주 와서 백인들에게 이런 문제를 한 번도 안 겪었다면서 겪는 사람이 문제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글쎄.. 필자도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서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있으면 아무것도 안 겪었겠지 싶다.
아무튼..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게 왠지 그 언어로 인해서 덜 떨어진 열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남의 나라에서 겪는 언어 문제, 비자로 인한 서러움.. 말로 어찌 다 할까.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동양인들에 대한 시각이 안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보여주고 풀어내고 싶었다. 호주에서 동양인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가 새로이 창조한 우리의 문화들.. 예술가로서 삶을 지속하는 이야기들.
어쨌든, 그 후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나는 현재 이민 1세대로서 나만의 혼종 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구나..라고 시각과 관점을 바꾸어버렸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냥 이렇게 일단 생각을 시작했다. 아마 전시회는 이렇게 작가들의 이민자로서의 삶의 이야기, 예술에 대한 철학과 마음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작품을 풀어낼 것 같다.
생각해두었던 작가들을 섭외하기 시작했으며.. 더 확실한 콘셉트가 나올 때까지 몇몇 작가들은 마음속에 저장했다. 같이 공부하는 경력 많은 큐레이터 친구에게 작가들 소개를 요청했으며, 내가 봤을 때에 전시회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작가들을 몇몇 이미 섭외했다. 일정 수의 작가를 미리 섭외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뭔가 틀이 잡힌 느낌이었다. 이제 콘셉트 스테이트먼트를 시작해야지.
그래도 한국 작가가 더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그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좀.. 실망했던 일이 있었다. 내가 전시회 작가를 찾는다는 말을 지인에게 듣고 연락을 주신 분이신데.. 그분과 대화 후, 좀 멘붕이었다. 할 말 하지 않는 게 옳은 거겠지. 나는 개인의 이익이나 돈 생각해서 사람 머릿수나 채우기 위해서 한국 작가를 섭외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종종 사람들 생각은 내 마음 같지가 않는구나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렇게 거의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포기를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고 친분 있는 한국 미술협회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었다. 추천으로 몇몇 작가분 그림을 봤는데,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발견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작품 속에 보이는 의미들과 몽환적인 느낌들이 너무 좋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다. 그래서 마음이 다시 괜찮아졌다!!!! 선생님께서 연결해주셔서 그분과 통화를 했는데, 정말 온화하신 분이셔서 너무 좋았다. 다음에 작품 이야기 들을게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이런 분을 발견하다니! 왠지 나 자신에게 너무 뿌듯했던 날이었다.
과제를 마무리하고.. 전시회 준비를 해야겠다!
솔직히 작품 만드는 것도 뿌듯하고 즐겁지만.. 큐레이팅 하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것 같다.
로또 되면 당장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 목록들이 좀 있다. 내 개인 갤러리가 시드니 중심에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빨리빨리 과제 끝내야지.. 그리고 인터뷰 자료들도 준비하고, 갤러리에 대해 여러 가지 글도 써야만 한다. 아휴.... 아주 일복이 터졌구나. 코로나인데, 우울할 틈이 없어서 감사할 뿐..
이번 주에 과제 끝나면 그래도 마음에 좀 여유가 좀 더 생기겠지. 과제하면서 계속 어제 드라마에서 나온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듣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
첨엔 혼자라는 게 편했지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에 너의 기억을 지운 듯했어 정말 난 그런 줄로 믿었어 하지만 말이야 이른 아침 혼자 눈을 뜰 때 내 곁에 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 건 없니 날 웃게 했던 예전 그 말투도 여전히 그대로니 난 달라졌어 예전만큼 웃질 않고 좀 야위었어 널 만날 때보다 나를 이해해준 지난날을 너의 구속이라 착각했지 남자다운 거라며 너에겐 사랑한단 말조차 못 했어 하지만 말이야 빈 종이에 가득 너의 이름 쓰면서 네게 전활 걸어 너의 음성 들을 때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 건 없니 내가 그토록 사랑한 미소도 여전히 아름답니 난 달라졌어 예전만큼 웃질 않고 좀 야위었어 널 만날 때보다 그는 어떠니 우리 함께한 날들 잊을 만큼 너에게 잘해주니 행복해야 돼 나의 모자람 채워줄 좋은 사람 만났으니까
가사 속에서는 야위었지만..
나는 이 나이에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받는다고 하도 먹어서 몸이 좀 부었다가 조금 다른 점일 뿐. 코로나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완전 봉쇄가 되어서 밖에 나가는 것도 제한이지만.. 이 과제가 끝나면 그래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할 듯하다. 살 좀 찌면 어때, 거울 보면 그건 그거대로 여전히 이쁜데. 응? ㅋㅋㅋ 나는 이렇게 혼자 착각하면서 산다..... 그래도 코로나 풀리면 더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서! :)
30대가 되어서 한 연애는 뭐랄까.. 나도 내가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었나 놀라웠다.
나는 내가 굉장히 감정적이고, 표현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이 먹으면서 마치 마음속이 서늘해진 것 같아서 서글프기도 하다. 예전처럼의 뭘 몰랐던 그런 무모함은 이제 내 인생에서 없는 것 같다. 대신 상처를 크게 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다. 때론, 후회도 된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리고 이상형의 기준이 바뀌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 어쩌면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논문과 에세이를 체크해주고 피드백 주는 남자?! (며칠 전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도 나와 똑같았다. 경쟁자!!!)
그래도 지금이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목표를 하나씩 이룰 때의 그 성취감이 말도 못 하게 좋다. 좀 늦게 시작한 만큼 더 간절한 것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종종 혼자만의 시간도 너무 잘 보낼 수 있는 그런 성숙함이 좋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과 아이를 보살펴주는 것도 여자로서의 삶에서 큰 축복이지만.. 아무래도 나에게는 이쪽이 내게 주어진 더 큰 축복이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야지만..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그냥, 나의 작은 이기적인 생각들이다.
오랜만에 라비올리를 만들었다. 버터와 마늘을 볶은 후, 버섯을 썰어놓고.. 발사믹을 부었다.
그리고 리코타와 버섯이 들어간 라비올리를 넣어준 후, 우유를 조금 넣고 졸여주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인생 레시피였다.
처음에 호주 와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캄포스 커피..
예전보다 맛있지는 않다. 맛도 많이 변했다.
오너가 바뀌었고.. 너무 상업화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젠 너무 흔해진 캄포스 커피. 그래서 특별한 게 없어졌다.
캄포스 커피를 울월스에서 만났을 때, 말세로구나 했다.
원래 마시던 커피는 75불 이상 구매해야지 배송 가능해서..(혼자 마시는데, 75불어치를 살 필요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울월스에 가서 오랜만에 가장 신선한 날짜로 커피빈을 집어왔는데, 산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구수하다. 재미없는 무난한 맛.
나쁘진 않아.. 그래도 처음의 캄포스가 너무 그립다. 내 입맛이 변한 건지.. 네가 변한 건지..
그래도 오랜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무난하게 마시는 중.
다음 주에 그냥 75불 이상 커피를 시키리라...
월남 빵도 먹고.. 오늘도 공부하며..
이번 주까지 내야 할 과제를 마무리 지어야지. 그래도 같이 공부하고 일하는 동료들이 많이 배려해주고 예뻐해 줘서.. 내가 여기까지도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
같이 일하던 동료가 코로나에 걸렸다. 그저께까지 Zoom 미팅으로 봤었는데..
걱정이다. 오늘 기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