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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Sep 24. 2021

전시회 준비하면서 만난 표절 문제

씁쓸함이 카카오초콜릿의백만배쯤되는 날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소한 미친 일들이 많았지만.. 무사히 전시회를 론칭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29일까지 일주일 정도 남은 이 시점.. 


슈퍼바이저가 선택한 J의 작품 이미지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먼저 올리게 되었다. 이걸 영웅 이미지(Hero image)라고 부르는데, 한국말로는 대표 사진이라는 뜻이다. 


티저 이미지를 올리게 되었는데, 웬일.

미친 메시지들을 따다다 다닥 받게 되었다. 


"실망스러워. 네가 그러고도 아티스트야? 왜 내 걸 베껴??? 엉???"


굉장히 무례한 메시지가 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영어로는 더 가관이었다.

이 지저분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과정을 굳이 일일이 여기에 쓰고 싶지 않다. 


미친 메시지를 나에게 보낸 그녀는 기존에 알고 있던 아티스트였는데, 솔직히 좋은 평판은 주변에서 듣지 못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그녀를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까. 또, 그녀가 종종 남들의 작품을 카피한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난 내 브런치에서 쓴 적이 있는 아티스트는 실제 그렇게 그녀에게 기술을 빼앗기셨는데(?), 솔직히 100% 같지는 않으니까.. 그냥 참고 넘어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 기분이 상당히 불쾌하셨지.


어쨌든, 그녀의 말인즉슨.. J와 내가 그녀의 작품을 훔치고 베꼈다는 것이다. 

엥? 나는 왜.........................??? 나 이번에는 작가가 아니라 큐레이터인데..... 저거 내가 안 만들었는데?!


J는 아시안 문화권에서 자라왔고, 도자기로 음식을 만드는 작가이다.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실제로 요리 학교에 가서 베이킹을 배워오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도자기로 음식 만드는 게 뭐 이상한가.. 솔직히 나이도 J가 훨씬 많다. 


그녀가 똑같다고 우기는 작품을 살펴보았는데, 솔직히 두 도자기 작품 소재가 '누들'과 '도자기'라는 점을 빼고는 유사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본인만 아시안이고 본인만 누들 먹고 자라왔나. J와 그녀의 작품은 소재는 같지만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유사점을 못 찾겠다고 했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J와 직접 이야기하라고 했다. 

근데, J랑은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가 자신의 작품과 콘셉트를 훔쳤다고 말한다. 


내가? 왜?????????


필자는 이번에 전시회 준비하면서 아티스트 작가들을 모집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에게 내 전시회 참여할래?라고 물어봤다. 이런 작품들이 좋겠는데?라고 말했고.. 그녀는 이 전시회가 작아 보여서 인지 당일까지 말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작가들을 모집했었다. 그 당시 도자기로 음식을 만드는 작가가 그녀와 J를 포함해서 세명이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그녀 혼자만의 생각에 의하면.. 그녀가 내 전시회를 안 하겠다고 해서.. 내가 J를 그녀 대신에 대체했다는 것이다. 내가 왜??? J는 경력이 정말 훌륭한 아티스트인데, 대체 왜... 

나는 이래서 어정쩡한 사람들이 정말 싫다. 조금만 칭찬해주면 자기가 엄청 대단한 줄 알고 너무 빨리 교만해지니까.. 저번에도 문제가 있었던 아티스트와 공통적인 문제이다. 인스타 팔로우 수가 천명만 넘어가도 본인이 엄청 유명인인줄 아는 사람들이 제일 우습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J를 전시회에서 선택했기 때문에 그게 내가 자기 작품을 베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전시회가 그녀 자신만의 '전통적인 아시안 문화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내가 그녀의 콘셉트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알아야 하는 게 J도, 나도.. 그리고 이 전시회에 참여하는 14명의 다른 아티스트들 모두 아시안 출신이다. 우리의 삶에는 아시안 문화가 뒤섞여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경험을 이 전시회에서 이야기하는데 그게 표절이라면.. 그녀는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아시안인가... 


나에게 그녀의 말은 점점 더 심해졌고.. 억지가 한계를 넘어서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 슈퍼바이저에게 일러서 내가 이 전시회를 못하게 하겠다는 유치함까지 보여줬다. 네 맘대로 해라.. 


아마 그녀가 원하는 건 내가 그녀에게 잘못했다고 빌면서 J를 내 전시회에서 냉정하게 내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사실 그녀가 가진 증거들이 확실하고, 그녀의 주장이 뚜렷하다면 나 또한 J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지금. 


조용히 그녀에게 내가 찾은 아티스트들의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녀가 똑. 같. 이. 베낀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보내주면서 "그럼 이건 누가 베낀 거지?" 한마디 딱 했다. 그러고는 그녀는 입을 다물며 조용해졌다. 


그래, Shut up. 


그녀가 콘셉트와 작품을 그대로 똑같이 베낀 아티스트 Stephanie H.Shih의 작품들


슈퍼바이저에게 이 일을 보고했고,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너무 내가 슈퍼바이저에게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털어놨나 걱정이 되었는데, 아침에 이메일이 왔다. 


엘레인! 계속해서 소식을 전하고 미리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다니 유감스럽습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명료하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일단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은 피하세요. 그녀에게 누구도 그녀의 작품을 카피하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J를 선택한 것은 그녀를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라 J의 작업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는 경우, 당신은 갤러리 법률팀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요.

나는 도자기 음식이나 국수 같은 그들과 매우 유사한 예술 작품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그건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걸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네요. 만약 그녀가 슈퍼바이저와 이야기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미안합니다. 이 까다로운 문제를 전문적이고 친절하게 유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슈퍼바이저의 친절한 조언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최선을 다해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아오, 원래는 ㅆ 나오는 단어가 먼저여야 했다. 성질 같아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전투적으로. 


혹여나 이런 일을 당하는 분이 계신다면.. 뭐든지 이메일을 꼭 남겨놓으시기를 추천한다. 만약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경우,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서 유감스럽습니다. 어제 내 상사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고, 나는 단지 쇼의 큐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먼저 J의 작품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당신의 작품을 복사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쉽게 대체하기 위해 J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의 작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당신의 도자기 음식 작품과 같은 다른 작가의 사진을 보여 드린 것처럼 도자기 음식이나 도자기 국수와 같은 매우 유사한 작품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티스트는 항상 작품에 크로스오버가 있습니다. 하지만 J와 나는 당신의 작품이랑 아트 콘셉트를 베끼지 않았고, 어느 쪽이든 간에,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그것은 J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당신은 세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 아닙니다. J와 저의 전시에 참가한 다른 14명의 작가는 아시아인이며 아시아인으로서 문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우리 이야기이고 나는 당신의 개념을 카피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학에서도 이 주제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단 한 번도 호주에서 당신의 에세이나 기사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그녀는 그런 게 없으니까 내가 못 읽고, 레퍼런스로도 쓰지 못한거다.) 대체 어떤 부분이 표절인지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제 상사가 J의 작품을 전시회의 대표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보기에 그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아요, 당신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대표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감독자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이메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그녀의 억지였고.. 미술에 종사하는 주변 사람들 중 100% 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물론,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반박을 해야지. 이건 인정한다는 의미지? 법적으로는 그래. 지난 학기에 미술법 공부한 게 뭔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대체 왜 이런 미친 짓을 할까.. 궁금했다. 


착한 J는 꿈에도 상상 못 할 그의 등 뒤에서 벌어진 이 미친 이야기들............................


그녀는 나에게 이메일에 답을 보내는 대신, 뒤에서 내가 자신의 작품을 훔쳤다며 말을 만들어서 딱 한 명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만들었다. 이 과정이 너무 속상해서 오늘 울었다. 적어도 그 한 명은 나에게 사실 확인을 했어야 했고, 물어보고 결정을 했어야 했다. 근데, 믿는 사람이 바보더라. 그걸 진짜 그 말도 안 되는 걸 믿는 사람이 있더라. 물론, 그 딱 한 명은 그녀와 특별한 관계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인데. 4년 동안의 시간들이 정말 너무 서운하더라. 더이상 제자로써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를 수 없음을 깨달은게 너무 슬펐다. 


다행히 그 한 명 빼고는 전부가 이미 다 알더라.. 이래서 사람은 평소 평판이 중요한가 보다. 




이렇게 일들이 대충 마무리한 후.. J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J는 이미 이 상황들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엘레인, 나는요.. 내 작품에 대해서 누군가 이상한 메시지를 보낼 때, 그냥 그거 읽지 않고 지워버려요. 그것들이 시기와 질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J가 나보다 낫구나.. 


"엘레인, 지금 주변에서 엘레인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정말 많을 거예요. 지금 엘레인은 정말 놀랍도록 잘 해내고 있거든요. 엘레인, 부디 강하게 마음먹어야 해요. 이런 것들이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

시드니에 락다운이 풀리면 엘레인이 나를 만나러 와 주면 좋겠어요!" 

... 내가 잘하고 있다고요? J는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것만 보이나 보다. 


"엘레인, 아티스트들은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린 서로에게 그런 사람들이 됩시다."


나는 흔쾌히 케이크를 사들고 꼭 J를 찾아가겠노라고 화답했다. 

이런 친절하고 따뜻한 J에게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왜 있었을까.. J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학교에서 공부할 때.. 특별히 관계가 좋지 않고,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나요?


"아니요.. 다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말을 듣고.. 뭔가 슬퍼졌다. 그녀는 J와 나에게 뚜렷한 이유 없이 대체 왜 그랬던 걸까. 

그녀에 대해 조심스럽게 J에게 물어봤다. 쏟아져 나오는 그녀에 대한 칭찬들.. 추억들... 


둘이 친구였다는 게 나는 좀 충격이었다. 

정말 그 유치한 시기 질투가 이유인가. 고작? 그래서 그녀는 절대 J에게는 말 못 한다고 하면서 뒤에서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한 것이었나? 갑자기 너무나도 슬퍼졌다. 


그리고 나한테는 대체 왜 그런 거지? 와... 

그녀에게 스트레스받고 괴롭힘 당했던 며칠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녀의 타겟팅은 J가 아니라 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거 진짜 나쁜 년이네.. 싶더라. 그리고 그녀는 너무나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씁쓸함이 카카오 초콜릿의 백만 배쯤 되는 날이었다. 


만나는 날, 그녀에게 할 말을 준비했다. 

Shame on You
부끄러운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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