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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Jan 29. 2021

빅 티에우, 주얼리에 담긴 이민자의 이야기들

나에게 처음 주얼리를 가르쳐주었던 사람

애증의 빅 티에우(Bic Tieu). 그녀는 필자가 몇 년 전 선택과목으로 주얼리 만들기 수업을 들었을 때, 필자를 가르치던 젊은 교수였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주얼리는 쉽고 재밌을 줄 알았다. 주얼리 만들기는 그야말로 필자에게 완전 생전 처음이었는데, 첫 과제에서부터 정말 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 차라리 에세이나 쓸걸, 왜 필자는 무모하게 해 보지도 않은걸 도전했던 건지..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주얼리는 필자의 생각 이상으로 비싼 재료비와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강요하는 일이었고, 필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왜 주얼리들이 비쌀 수밖에 없는지 아주 뼈속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필자는 이 경험으로 필자 스스로가 게으르지만 않는다면.. 스스로를 위한 반지나 목걸이, 귀걸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근데, 항상 할게 너무너무 많고.. 게으르다는 게 함정. 아니.. 그걸 일일이 만드느니 돈 주고 그냥 살래..라는 생각. 


반짝거리는 주얼리를 볼 때면 필자는 그냥 생각한다. 

와.. 엄청 문질러서 반질반질하구나. 저거 3일은 문질렀겠다..... 


당시 필자가 손 다쳐가면서까지 만들었던 은 반지 세트. 도시 건물을 테마로 했다가 엄청 크게 까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낭만이 없었어... 


대학에서 공부하는 다른 과목들 때문에도 과제들은 넘쳐나고 필자는 미친 듯이 혼란스럽고 바빴던 학기였다.

어느 날, 빅은 필자의 주변을 지나다가 필자가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로 오직 맛집을 찾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서 필자와 빅은 오해의 골이 서로 깊어졌었다. 응? ㅋㅋㅋ


한국의 구름 문양에서 영감 받아서 만든 꽃 비녀, 지금보면 유치한 디자인이지만 필자에게는 첫 쥬얼리 작품


그렇게 학기가 끝났고.. 필자는 두 번 다시는 빅의 수업은 듣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니, 주얼리 수업 자체를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필자는 필자의 자리에서.. 빅은 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학교에서 마주치면 종종 짧게 인사하는 사이로 지내왔다. 그러다가 어떠한 계기로 빅과 마음이 풀어지게 되었다. 필자가 주로 일하는 스튜디오에서 빅이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는데, 꾸준히 작업하는 필자의 모습을 빅이 좋게 봐주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빅은 필자의 SNS를 팔로우 하기 시작했으며, 필자에게 종종 SNS로나마(코로나 때문에 다들 집에서 작업) 안부를 전해주고 좋은 말을 먼저 많이 해주었다. 그런 빅을 보며 필자는 문득 빅의 작업들이 궁금해졌다. 빅의 인스타에 들어간 순간, 와.............. 또 언젠가 나 또 주얼리 해봐야지라는 어리석은 생각들이 필자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가득 차기 시작했다. 



Blossom Ring Box, Sterling Silver and Gold Plating. Bic Tieu
Flowery Series, Sterling Silver, Gold Plating, Urushi, Mother of Pearl. Bic Tieu


빅 티에우는 호주에서 자란 베트남 백그라운드를 가진 디자이너이자, 제작자, 호주 국립 대학교(Austrailian National University, ANU)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자 교육자이다. 빅의 작품들은 본인의 베트남 백그라운드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감성에서 영감을 얻은 전통적인 공예 방법 및 현대 공예 방법과 기술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적인 혼합을 사용하여 디자인을 하고, 만들기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든다. 현재 빅은 박사과정의 논문으로 동양과 서양 사이에 살고 있는 호주 여성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민의 영향과 관련하여 현대 디자인 및 공예에 대한 물질문화를 조사한다고 한다. 



Re-ConFloral, Sterling Silver and Stainless Steel Cable, Big Tieu

빅의 정체성은 중국, 베트남, 일본, 호주 문화의 복잡한 융합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모란을 모티브로 한 이 펜던트는 빅의 문화와 하이브리드 정체성에 대해 표현하고 말하고 있다. 이 펜던트의 모양대로 모란은 끝이 없는 원으로 그려지며 겹쳐지고 구성된다. 겹침과 연속성은 바깥쪽으로 뾰족 튀어나온 가시 같은 부분을 흐리게 하며, 빅이 이민자로서 겪었던 문화 경험들을 할 때의 유동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Home Geometries. Sterling Silver, Gold Plating, Abalone shell and Japanese Lacquer, Bic Tieu

작품 제목인 기하학적인 집(Home Geometries)은 '집'이라는 공간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며, 호주에서 겪는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집이라는 장소를 통해서 탐구하는 작품이다. 필자는 이민자로서 한국인도 아니고, 호주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필자가 겪은 문화적 문제들과 정체성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었다. 빅이 정상이 아닌 기하학이라는 단어를 작품 이름에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이민자로서의 자신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보통의 호주인들 같지가 않고 왠지 나와 내 가족만 좀 다른 기하학적인 것만 같다는 그런 표현-. 우리는 그들과 서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으니까. 필자의 눈에는 작품 속의 저 수많은 조각들은 이민자로서 여러 일들을 호주에서 겪었던 빅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Moving Repositories, Sterling Silver

이 작품을 통해서 빅은 디자인과 제작, 그리고 제작 과정 중에서 변형하는 금속의 과정, 금속의 시각적인 번연을 통해 아이디어를 조사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빅과 필자가 살고 있는 시드니는 이민자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들이 모인 다문화 국가이다. 빅은 중국, 베트남, 약간의 유럽인의 피가 흐르는 호주에 살고 있는 이민자이며, 이 작품은 거주지와 거주하지 않는 지역의 위치가 기본 주제라고 한다. 즉, 작품에 비어있는 공간은 거주하지 않는 지역에서의 빅 본인, 이민자, 이민자로서 살아왔던 구멍 난 마음들을 나타내는게 아닌가 싶다. 필자의 개인적 해석으로는 서로  얽혀있는 수많은 문화들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며 호주라는 국가에서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채 틀에 갇혀서 사는 이민자들의 이미지도 떠올랐다. 작품의 제목인 이동 저장소(Moving Repositories)처럼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빅의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 내에서 다른 관점으로 정체성, 공간 및 위치를 이해하려고 했다고 한다. 



Thresholds, Sterling Silver, Stainless Steel, Masking Tape and Acrylic Paint, Bic Tieu

무게(혹은 기준치, Thereholds)는 브로치 2개와 반지 1개로 구성된 작품인데, 이 작품들은 현시대의 글로벌 이주 위기에 대해 논평한다고 한다. 그냥 봤을 때는 어깨에 놓았을 때, 참 무거 워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작품의 제목인 무게는 빅의 생애 경험을 바탕으로 이민자들이 다른 문화 사이의 삶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빅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녀의 작품들과 세계는 유독 그녀의 이민 경험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찡해졌다. 필자 또한 대학에서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썼는데, 필자의 이민자로서의 경험과 내가 보고 경험하고 자란 한국의 문화가 아닌 전혀 다른 문화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경험들을 토대로 아픔을 승화시키려고 애썼다라고나 할까. 필자 또한 호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마음에 맺힌 게 참 많았었다. 


필자는 비자 문제부터 모든 문제들을 오롯이 혼자 해결하고 감당했어야 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민성 지나갈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쪽이 욱신거린다. 필자의 20대의 서러움들이 생각나서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홀로 겪어야만 하는 호주에서의 이민 생활은 녹록지 않았지만 대신 필자는 이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아졌다. 그 쉽지 않았던 경험들이 필자에게는 현재 필자가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지식들이 되어주었다. 당시는 내가 왜 이런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이해 못하는 일들 투성이었지만 이제 필자는 필자에게 주어진 삶에 마음속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비록 빅과는 출신 국가는 다르지만 이민자로서의 아픔과 경험들에 공감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녀의 작품들이 유독 이해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픔에도 불구하고 빅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아주 잘 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삶을 필자는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었다. 필자도 필자의 삶을 잘 이루어갈 것이다. 


여러 겹의 마스킹 테이프들을 호주 토착 꽃들의 형태로 잘라서 서로 꼼꼼하게 만들어놓았다. 주얼리에서 엉뚱하게 마스킹 테이프? 빅이 이 작품에서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한 이유는 마스킹 테이프는 귀한 물건도 아니고, 부패하기도 쉽다. 이것은 인간의 곤경에 따른 취약성을 언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만약 이 꽃들을 각자 하나씩 따로 본다면 관객들은 아, 이것은 꽃이 구 나하고 꽃의 이미지를 식별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뭉쳐놓은 꽃들을 함께 보면 대상이 모호해지고, 시각의 이미지 방향이 흐트러진다. 



Bush Fauna and Flora, Metal Urn, Bamboo Ply and Masking Tape, Bic Tieu

지난 몇 년, 호주는 유독 수난이 참 많았다. 산불에 의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들이 훼손되었으며,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다. 산불이 진정되는가 싶었더니 코로나 문제 때문에 호주 또한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빅 티에우는 이 작품에서 호주 환경의 안정성과 기후 변화, 산불을 언급한다. 이 작품에는 총 20개 종류의 호주의 토착 동식물들이 패턴에 표현되었으며, 이러한 호주의 상징적인 모티프들을 사용하여 금속으로 만든 이 작은 항아리를 재구성하였다. 가장자리가 타버린 대나무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산불에 관해 은유적인 의미를 나타냈다. 시간, 봉쇄, 무상함을 표현한다. 이런 제작 행위를 통해 그녀는 사람들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의 중요성과 우리 생활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기 바라며, 시각적인 언어를 통해 작품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Circling Dimensions, Connected Lid and Base, Vessels, Copper, Lacquer and Shell. Bic Tieu






필자는 이렇게 주변 예술가들에 대해 조사하고 글을 쓰면서 그들의 작품과 미학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좋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게 필자 본인에게는 공부가 되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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