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위한 게임, 그 설계는 대체가 아닌 감정의 확장에서부터
1. 엔하이픈의 IP를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엔하이픈 월드 : 이터널모먼트'가 올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장르는 시네마틱 어드벤처. 개발은 BTS, 블랙핑크, NCT 등의 게임을 만들어온 테이크원컴퍼니가 맡는다. K-POP IP의 게임화를 꾸준히, 그리고 퀄리티있게 시도해온 몇 안 되는 회사다. 개인적으로 테이유원컴퍼니의 BTS WORLD, NCT ZONE 등을 재미있게 즐긴 기억이 있다. 해당 타이틀들은 기존 성공작들의 포맷을 변주한 느낌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K-POP IP를 게임이라는 매체에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엔하이픈의 게임도 꽤 기대가 된다.
2. 한때 나는 K-POP IP와 모바일 게임의 조합이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K-POP의 IP파워는 강력하고, 타깃 유저도 명확하다. 실존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감정을 확장시키거나 팬이 직접 인터랙션하는 체험 등, 게임이기에 구현 가능한 영역이 K-POP IP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본질적인 생각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K-POP 아티스트의 덕질을 하면서, 현장에서 팬의 시선으로 게임을 바라보게 되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게임이 기대하는 행동과, 팬이 원하는 감정선이 달랐기 때문이다. 개발 측이 원하는 게임 속의 경험과 현실의 팬 경험은 종종 엇갈린다.
3. 한국 게임업계 특유의 과금 구조, 레벨 디자인, 유저를 향한 태도 등은 아이돌 팬이 기대하는 감정적 체험을 손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여성 유저를 주 타깃으로 삼으면서도, 그들의 감수성이나 팬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례도 적지 않다.
또한 원 IP의 본질을 게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오만함 역시 계속 지적받아왔다. 팬을 위한 게임이라는 명목 아래 IP가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때로는 원래의 맥락을 잃은 채 대체재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4.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더 오래 떠올리고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시간과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설계에 반영하지 못한 채 익숙한 게임 공식 위에 IP를 얹는 방식이다. 단지 인기 있는 아티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팬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IP를 빌리는 입장이면서도 그 IP의 주체인 아티스트들에 대한 리스펙트가 없는데 어떻게 팬이 좋아할 수 있겠는가?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K-POP과 게임의 조합에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팬이 원하는 것은 함께 겪었던 순간과 좋아하는 마음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장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원 아티스트를 투사하고, 그 간극을 스스로 메울 수 있는 여백일지도 모른다.
6. 이미 한국 게임업계는 K-POP 팬들에게 상당 부분 신뢰를 잃은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이 나온다면 결국 플레이할 사람들은 팬이다.
아티스트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는 입장에서, 대체제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함은 내려두고, 그들의 서사를 중심으로 팬들의 감정을 확장시키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7. 결국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유저 이해’가 최우선 & 최중요 과제다.
게임업계 여러분들, 빠순이라고 낮게 보고 들어가지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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