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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Jul 07. 2015

언제부터 였을까 '의자'

의자,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시작은, 그랬다.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고, 여느 때처럼 난 노트북을 펼쳐 작업을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작업을 하는 것도, 시간이 차 정리를 하는 것도 다를 것이 없었다. 밖으로 나왔는데, 귀가 허전했다. 무언가 빠뜨린 것 같아 확인을 해보니 이어폰을 데려오지 않았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카페로 들어갔고, 알바생과 두 번째 인사를 주고받았다.






전주 영화 거리의 어느 카페 (2015년 3월)






이어폰은 가만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폰을 들고 카페를 나오는 순간, 빈 의자가 보였다. 빈 의자는 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가득 품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다시 앉아버렸다.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있는 것이
나의 뒤에서 누군가 말없이 안아주는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그 뒤로 어디서든 의자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특히 누군가 홀로, 때로는 함께 머물렀을 빈 의자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좋아졌다.






공덕역 인근의 어느 카페 (2015년 6월)






지난 6월,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공덕역으로 향했다. 술도 술이지만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 남자들이기에 저녁을 먹기 전 잠시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작은 복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자리에선 분주하게 세 잔의 커피를 내리는 모습,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커피를 기다리며 1층을 훑어보다 나란히 놓여있는 세 개의 의자에 시선이 머물렀다. 특히 홀로 방향을 틀고 있는 오른쪽 끝의 의자는 나로 하여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질투나!

 




방향이 참 귀엽게도 틀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나란히 앉아있었을 터였다. 그러다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왼쪽과 가운데 둘은 커플이었을까. 그래서 오른쪽 끝이 질투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둘은 여자들이었을까 그래서 오른쪽 끝의 남자가 대화에 쉽게 껴들지 못했던 것일까. 균형을 깨고 홀로 방향을 틀어버  금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전주 영화거리의 어느 밥집(2015년 1월)






함께 온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의자는 여러 방향을 보여준다. 나란히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등을 지고 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낯설고 조심스러운 방향은 등을 지는 반대 방향일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등을 지고 앉아 있는 경우만큼은 예외다. 서로 일어서고 앉으며 나로 인해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방향은 나란히 앉게 되는 경우일 것이다.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주 보는 것도 가까운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앉아 있는 방향이 낯설고 조심스러운지,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의자와 의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마주 보고 앉을 경우, 테이블이 있을 테고 등을 지고 앉을 경우 낯설고 어색한 만큼의 거리가 있을 테니.


그래서일까, 소중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뒤가 아니라, 나란히 앉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해
낯설고 어색한 방향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서촌의 어느 카페(2014년 9월)






지금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았을 때부터 서촌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곳을 찾는다. 작년 가을도 그랬다. 여름을 네 번째로, 가을을 첫 번째로 좋아하는 나에게 점점 짧아지는 가을은 하루 하루가 아쉬움의 연속이었고, 다시 한 번 서촌을 찾게 만들었다. 골목길을 열심히 돌고 돌아,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야 발걸음은 멈췄고,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는 서촌에 처음 와본듯한 커플이 앉아 있었고,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에 남겨진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가 의자를 입구쪽으로 돌려 은행나뭇잎이 내려앉은 돌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카페에서는 큰 창을 통해 경복궁의 돌담을 볼 수 있다) 커피를 마시던 남자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 의자를 돌려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말없이 자신을 좇던 그 따뜻한 시선을






수원의 어느 벽화골목(2015년 3월)






남자에게 여자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그랬다.

의자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전히 궁금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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