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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Dec 21. 2015

언제부터 였을까 '보물 찾기'

일상,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나도 찾고 싶어! 나도 줘! 으아아앙 -


처음엔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 생각했고, 다음엔 친구들이 날 골탕 먹이는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보물 찾기와 쉽게 친해지지 못했고, 어린 마음에 집에 돌아와 아무런 설명 없이 펑펑 울며 '나도 줘!'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 뒤로 얼마 동안 가족여행에서 '보물 찾기' 시간이 생겨났던 걸 보면 내 모습이 많이 짠해 보였구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물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막상 친구들이 찾은 보물을 보며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찾지 못했다'라는 실망감에 입술을 많이도 삐죽거렸으니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찾지 못한 서러움과 아쉬움이 더 컸던 것이다.





2014년 가을, 군산의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앤디워홀





시작은, 불시착으로부터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며, '마담 보바리',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 작이 아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2001년 작)', '아무르', '파리 폴리' 등에 출연한 이자벨 위페르의 '마카담 스토리' 예고편을 보면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알고 있나요?
모든 시작은 불시착이라는 거 





어릴 적 아쉬움이 이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 뒤로도 나의 보물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극히 주관적인 보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고, 정해진 숫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며,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목길이라는 공간은 내게 더없이 완벽한 '불시착'이었다. 어릴 적, 보물 찾기를 위해 돌 밑을 뒤지고,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녔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골목길 이곳, 저곳을 헤매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맨다. 다행히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어렵지 않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어 대상을 마주하는 방법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의자도, 창문도 그들에게 스며든 빛들까지도 내겐 더 없이 소중한 보물로 다가왔다.




 

2015년 가을, 양재역 근처의 어느 골목길





낯선 곳에서 마주한,
나만을 위한 순간을 거쳐
내 눈에만 보이는 보물로 바뀌는
그 찰나의 순간





시작은, 익숙함으로부터


데자부(Dejavu)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는데 처음 본 상황이 이미 익숙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우리가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현상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부자데(Vujade)로 항상 봐왔던, 또는 익숙했던 상황들이 새롭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최고의 놀이 공간이자, 많은 보물을 안겨준 골목길이라고 늘 새로웠던 것은 아니다. (앞선 글들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린 골목길을 나는, 한 번씩 아무 생각 없이 빠르게 지나치게 되었다.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익숙함이 두려운 이유는 익숙함의 대상에 대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가을, 삼청동의 어느 골목길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새로운 흔적들





익숙함에 익숙해져, 골목길에서 더 이상 보물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을 즈음. 오랜만에 평일 오전 정독도서관에 들렀다. 내가 직접 담고 있기 버거운 그리움들을 보관해놓은 곳이자, 언제나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그곳.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회동을 거쳐 작은 골목길들을 통해 가고 있었는데 벽 한편에 지난번에는 없었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그 변화를 나는 다행히도 알아차렸던 것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단서를 얻은 순간이었다.






2014년 가을, 합정의 어느 카페



얼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바라봤는지가 중요한 이유





골목길에 대한, '마지막 애정'에까지 익숙해져 버렸다면 아마 나는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없었을 것이다.


로운 곳을 찾는 것이 익숙한 곳을 찾는 것보다 쉬운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낯선 곳은 언젠가 익숙한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보물 찾기는 진행 중이지만 앞선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익숙함 속에서 찾은 보물에 더 많은 애정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비정성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말처럼 만물에 깃들어 있는 사랑을 알아보고 담아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역할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보물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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