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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Dec 29. 2015

언제부터 였을까 '듣는다는 것'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이야기

그렇게, 듣는 것을 시작하다


25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된 곳은 한 홍보대행사에서였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내게 기획 8팀 인턴이라는 신분은 그 무엇보다 소중했고, 첫 출근이 어느 날 어떤 시간보다 더 기다려졌다. 하지만, 그 설렘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보대행사 업무 특성 상,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았고 그 환경이 내겐 너무나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미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물론, 인턴 동기들 중에서도 나와 같은 성(性)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듣는 것에 익숙하고 잘 한다는 생각이 무너져 버린 것. 이 사실이 나의 당황스러움을 증폭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언제부터 였을까 '술' 중에서

조교로 복무하며 가장 신경 썼던 일 중 하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중략) 그때부터 나는 '듣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친구들과 지인들은 내게 각자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았고, 무언가 덧붙이지 않더라도 '듣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2015년 가을, 종로의 어느 골목길





회의를 하면서도, 커피 한 잔을 하면서도, 퇴근과 출근을 하면서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내겐 더 많았고, 동시에 2년 동안 거의 매일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듣는 것'의 극히 일부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속으로 가장 많이 삼켰던 것은 '그럴 리가 없잖아, 있을 리가 없잖아'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상대방과 상대방의 상황을 스스로 단정 지으며 편한 대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잠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잠겼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내겐 '별 일'이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모두 '별 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듣는 것의 시작은 지극히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어느 날




그렇게, 듣는 것을 '다시' 시작하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듣는 것'을 잘한다는 생각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말하는 힘이란, 우선 듣는 힘이 있어야 생겨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전달되는 '감정'들이 나를 통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무르게 되는, 감정의 전이가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감정들을 무시하게 되는 순간 '듣는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2015년 겨울, 익선동의 어느 카페




전이된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쌓여있는 비슷한 흔적들과 함께 묶어 놓는 것이었다. 몇 번을 읽었지만 아직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이라던지, 헤어졌지만 여전히 지우지 못하는 누군가의 흔적들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묶어 놓으면, 묶인 것들은 조금 더 빠르게  소화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상대방의 감정을 조금 나눠 담을 수 있는 '잔'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어느 날






그렇게, 듣는 것에 익숙해지다


그렇게, 그럭저럭 -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인턴 동기이자 친한 동생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나와 다른 층이었기에). 지금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 한잔을 기울이며 했던 이야기가 전화에서 느껴졌던 다급함만큼 중요하진 않았지만 그 녀석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며, 사무실로 들어오기까지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2015년 초,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했던 광주의 어느 숙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이지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 밖에 하지 않았는데', '감정을 나눠 받은 것도 아니고 동생의 말 이후에 어떤 말을 곁들여준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고마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추측을 통해 얻어낸 결과라면 생각이든, 감정이든 각자의 것들을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우리들이 '스스로 화자가 되어 뱉어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그 뱉어냄이 우리가 찾아낸, 스스로를 비워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니까, 그 날 동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기보다
아직 서툴었기에
스스로의 무언가를 버릴 때
용기가 되어줄,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듣는다는 것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듣는 것이 좋고, 나눠 담을 수 있는 잔이 되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대상이 조금씩 명확해지는 것 역시 - 좋다.









아, 6개월 간의 인턴이 끝나갈 무렵
나의 별명은 OO언니가 되어 있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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