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스무 살이 되기 전 술을 처음 접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한 잔의 술은 지독하리만큼 썼고, 그 날 나는 10년이 넘도록 지키지 못할. 아니 앞으로도 지킬 수 없을,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고 말았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어!
하지만 스무 살 신입생이 되어 더 자유롭게 접하고 마실 수 있는 때가 되자 스무 살을 기다린 이유가 마치 '술'이었던 것처럼 거의 매일을 함께 하게 되었고, 지난날의 약속은 '오늘은 조금만 마시자'라는 소박한(?) 다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던 때가 있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뱉는데 열중했었고, 다음날에는 전날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지난날의 술잔은 비워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그만큼 빠르게 채워졌는데, 다행히 이제는 빈 잔으로 머무르는 시간을 늘려가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워가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접해왔지만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 변덕이 심해지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잘 마시던, 그렇지 않던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싫을 때는 또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는 애증의 대상 술. 그럼에도 내가 10년 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야 술 한 잔에 담긴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빈 잔에 채워지는 것은 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잔, 두 잔 술이 비워지는 그 잔들을 우리의 이야기가 대신하기도 한다는 것. 그 이야기는 스스로 삼키기 위한 쓰라림이자 마음일 수도 있고, 함께 나누어 덜어내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예전에는 잔이 비워질수록 조용해졌는데
이제는 잔이 비워질수록 소란스러워진다.
그만큼 묻어둔 이야기도, 지나온 이야기도
많아졌다는 뜻이겠지
조교로 복무하며 가장 신경 썼던 일 중 하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훈련병이라는 신분이 되는 순간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과 시간이 끝나면 나는 한 명씩 차례로 불러 어려운 점은 없는지,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등을 묻고 듣는 일을 반복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듣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친구들과 지인들은 내게 각자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았고, 무언가 덧붙이지 않더라도 '듣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공감해줄 수 있다는 것에 좋았지만, 듣는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정작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함께 전이되는 감정들이 상대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그래서 한 번씩, 술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씩 술은, 무언가 시작할 좋은 변명을 만들어주기도 하니 말이다.
용기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시간이 필요해서일까
첫 잔에 하지 않았던, 두 잔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시간
세 잔, 네 잔 그렇게 비워지는 잔 대신
서로의 이야기가 채워지는 시간
여전히 술은 내게 애증의 대상이다. 그만 마주하고 싶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상.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알면알수록 더 큰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처음엔 아무 감흥이 없던 이 불빛이 식당을 나오면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보였던 것처럼. 이 날은, 술이 참 고마웠던 날이었다.
그래도, 알면알수록 즐거워도.
술에 취해 스스로를 잃고,
잊는 것은 피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