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백지가 있었다
2016년도 어느덧 보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지금. 올해는 앞으로의 어떤 해보다 더 빠르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서른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감정을 안고 맞이한 서른 살의 첫 달, 내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지난날들을 끄집어내 살펴보는 것이다. 조금은 무모하게 달릴 수 있었던 20대와는 달리 '선택'과'집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서른 살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래도 많이 배우고 느끼고 부딪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날들을 돌아보기 위해 든 '나라는 책'이 보여주는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어 작은 설렘을 안고 든
나라는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백지가 보인다
2015년이 끝나갈 무렵 서른 살이 설렜던 가장 큰 이유는 스무 살로 시작한 20대를 나름 꽉 채워 보냈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서른 살이 두려웠던 이유는 그 '나름'이 개인적인 기준에서 지극히 주관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서른 살이 되어 펼쳐본 '나라는 책'은 생각보다 백지가 많았다. 그 사실은 이전의 두려움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고. 어렵게 자리 잡은 서른의 출발점에서 스스로를 조금 더 뒤로 밀어버리게 되었다.
짙어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금 옅어지는 것
어떤 깨달음은 잔인하리만큼 무기력하다
백지를 바라보며, 어쩌면 서른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두렵고 설렌다는 조금은 단순한 기준으로 판단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이전의 생각들을 베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이 아니면, 지금만큼 내게 가까이 다가가는 게 힘들지 모르기 때문이고 무기력함이 계속될수록 스스로를 갉아먹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른의 백지가 내게 알려준 첫 번째 깨달음은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을 베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백지로 남아있는 한 페이지를 보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예전처럼 백지를 통해 밀려오는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 스스로 베어낼 수 있다면, 스스로 채워넣는 것은 더 쉬운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다시, 각자 이야기를 조금씩 채워넣는다면, 내년에는 한 권이 아니라 더 많은 '나라는 책'을 손에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보다 백지가 조금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중에서>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 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서른의 백지가 내게 알려준 또 다른 깨달음은
이제 더 이상 그대로 책을 덮어버리지 말라는 것
다음은, 당연히 오는 게 아니기에
여전히 백지가 있구나, 에서 시작되는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채워넣을 공간이 더 있었네, 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서른 살 나의 첫 달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