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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01. 2016

그때, 그 찰나의 순간 '한 사람을 위한 말'

한 사람만을 위한 인사에 담긴 기분 좋은 끌림

말로서 서로를 안아준다는 것


그 때, 그 찰나의 순간 '안아줘요' 중

사람의 체온과 체온이 맞닿는 것만큼 따뜻한 것은 없고, 그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서로를 안아주는 일이라지만 그 때 그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나는 말로서 다른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많이 노력 중이다. 내 한 마디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안겨줄 수 있기를.



처음엔, 조금만 다르게 표현하면 말로서 다른 사람을 안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대신 '어젠 잘 잤어요?'라는 표현으로, '잘 가요'라는 인사 대신 '날이 추우니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표현으로 말이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기존과 다른 말들이 더해진 인사를 전했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보다 가깝지 않은 관계였기에 낯선 이의 살가운 인사말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당신에겐 춥지 않은 날이었는데, 나의 인사말로 인해 순간 한기가 몰아쳤기 때문이었던 걸까? 그도 아니라면.. 왜 나는 5년 전,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얹어 주시던 기사님이 되지 못했던 걸까?





2015년의 가을, 강남역 인근의 어느 골목길





나와 기사님의 말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후였다. 


'잇티박스(EateaBOX)'라는 정기구독 서비스를 창업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은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정성스레 댓글을 남기고, 어떤 때는 우리 스스로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열심히 등록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도 회원수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정작 우리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시 밀려오는 의문들에 나는 그동안 내가 남긴 댓글들과 회원들 서로가 남긴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한 사람만을 위한' 말들이었다
그리고 이는 5년 전, 기사님에게는 있었고
그때의 내게는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


'오늘 예쁘게 입고 나오셨네! 곧 어두워질 테니 살펴 가세요'

5년 전, 기사님이 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께 얹어주신 말. 그 말이 무엇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할머니, 한 사람만을 위한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예쁘게-라는 말의 시작은 평소 할머니의 복장을 기억하셨기 때문일 테고,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꾸미고 나오셨다는 것을 눈치채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버스에 오르는 승객 한 명, 한 명의 매일을 기억한 채 인사를 건네셨기에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기사님이,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잠시 머물다 내리는 존재로만 생각했다면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다음 날의 작은 변화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커뮤니티에서 겉돌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와 이야기하는 상대의 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브런치를 예로 들자면, 작가가 그 날에 올린 글만을 보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에 써놓은 글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한 것이다.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중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
그렇게 우리가 '한 사람'에게서 놓치는 것들을 줄여가는 것






오랜만이에요, 몸은 좀 괜찮아요?, 어제 일은 어땠어요?


놓치는 것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난주, 감기에 걸려 고생이라는 글을 등록한 사람이 이후 다른 글을 남기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은 좀 괜찮아졌는지'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시험기간이라 한 동안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던 사람이 다시  찾아왔을 때, '오랜만이라는 말로 시작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응원의 말'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너무 바빠서 좋아하는 차 한잔 마시지 못했다는 사람에게는 '오늘은 꼭 좋아하는 허브티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침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겉돌지 않고 그들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2015년 강남의 어느 카페





난, 네가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해줄 때 가장 좋았어
나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부터를 기억해주는 것 같아서





여전히, 그때 우리가 운영하던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어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내게 친구이자 누나이고, 형이기도 한 그들. 작년 연말에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누나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랜만이에요'라는 말이 정말 좋았다며, 그  '마지막으로 분 순간이 언제인지를 기억해준다는 뜻일테니'라고 말이다.


 그 순간, 누나에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인사가 이렇게 오래 안겨있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2016년 겨울, 익선동의 어느 카페




안길 수 있다는 것은
튕겨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한 사람만을 위한 인사가
서로를 위한 좋은 끌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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