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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28. 2016

언제부터 였을까 '카페'

작은 소란스러움들을 눈과 귀를 통해 보고 담는 시간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옛 이야기를 떠올리는 곳


출근길과 퇴근길은 물론이고 집중해서 일을 할 때도 늘 상황에 맞는 음악을 즐겨 듣는 내 귀가, 유일하게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카페와 집이라는 공간에서다. 주문과 동시에 퍼지는 원두향과 커피를 내리는 소리로 만들어지는 기분 좋은 분주함. 마주 보는 사이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과 서로가 좋아하는 음료를 두고 한 모금, 한 마디씩 나누는 시간 등. 작은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시작되는 여러 이야기를 놓치는 게 아쉽고, 앞선 사람들이 겹겹이 쌓아놓은 흔적들을 하나씩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새겨진 두 사람의 거리


2016년 1월, 부암동의 어느 카페





어떤 메뉴를 좋아하고, 어느 자리를 좋아하는지, 마지막으로 갔던 날은 언제인지. 이 모두를 기억해주는 곳을 찾아갈 때면 언제건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피어오른다. 지난 1월, 반 년만에 찾아간 이곳에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며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테이블에 새겨진 흔적들이었다. 작고 네모난 테이블 곳곳에는 같은 크기의 동그란 흔적이 새겨져 있었는데 흔치 않은, 포근한 겨울 햇살을 머금어 더욱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창틀로 인해 생겨난 그림자는 테이블 가운데 뚜렷한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두개의 흔적이 유난히도 가까이 중앙 언저리에 몰려 있었는데, 함께 머물렀던 두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웠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음에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음에도
그 거리마저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두 사람의 표정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친구였을지도, 연인이었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었음에도 조금 더 가까이 머물기 위해 노력했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홀로 좁힐 거리가 없었던 내 잔은 참 멀리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 다한 연주와 한 잔의 커피


2016년 2월, 상수동 어느 카페의 다락방




집, 회사와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요즘 당인리 발전소 근처를 자주 찾게 된다. 합정과 상수, 홍대와 연남동으로 이어지는 동네들도 좋지만 번잡함을 피해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땐 아직 사람들이 덜 찾고, 작지만 독특한 카페들이 많은 이곳으로 오게 된다. 


올 겨울 가장 추웠던 어느 날, 합정에서 교육을 마치고 몇 번 들렀던 카페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러다 지금껏 보지 못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고, 짧아진 해를 대신해 은은한 불빛을 내던지는  그곳으로 이끌리듯 들어갔다. 넓지는 않았지만, 아늑함과 포근함이 더해진 공간의 가운데엔 작은 무대가 있었고 세 사람이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듯, 아담한 사이즈의 앞치마를 두른 주인이 좋은 순간에 찾아왔다며 원두를 추천해주었다. 못 다한 연주가 있어 준비하고 있으니  그동안 커피가 필요할 거라는 말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음 연주를 기다리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다음 연주가 시작되기 전이기도 했지만, 
좋은 순간에 찾아왔다는 그 말은
연주가 시작되기 전 피어오른 향이 
조금씩 옅어지는 순간에
내가 찾아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별이 뜨는 곳,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


2015년 가을, 합정의 어느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앞선 이야기를 다시 돌려 보는 곳이자, 못다 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는 곳. 그래서 카페엔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함께 했던 수많은 장소들 중, 카페라는 공간을 다시 찾기 힘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거리나 길과 같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남긴 흔적 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며, 머물러 있는 건 무엇이든 짙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찾게 되는 카페들도 있다. 내겐 '별이 뜨는 곳'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의자가 있는 이 곳이 그렇다. 별도, 달도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우리 앞에 놓인 커피 한잔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2015년 가을, 이태원의 어느 카페






인상 깊었던 영화의 배경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그때 본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함께 했던 카페에선 커피 향이 그렇다

주문한 커피가 내려오는 순간,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옛 이야기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카페라는 공간은 이처럼, 많은 이야기와 흔적들을 담아두고 있는 곳이며 커피 한 잔을 통해 언제든  끄집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되고, 떠올리게 될 지. 그렇게 나는 내일도 또 카페엘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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