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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19. 2016

언제부터 였을까 '문'

나와 내가 만나는 순간

매일, 우리 스스로를 갈아입는 '순간'


오가는 대화가 줄어들 때쯤, 한 번씩 꺼내는 질문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언제냐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시간에 품고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기에, 그 속에서 여러 모습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내게 다시 돌아오면, 나는 늘 밤 열두 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언제부터 였을까 '나만의  시간' 에서 이미 한 번 말했던 내용이지만, 그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오늘과 내일이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2013년 봄, 부암동의 어느 골목길





하루의 마무리와 시작을 동시에 하며 생각을 갈아입을 수 있는 밤 열두 시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순간은 바로 '문'앞에 서는 때이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문의 역할이 스스로를 갈아입는, 하루 중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딸과 아들에서 학생이자 신입사원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에서 각자의 또 다른 역할이 되기도 한다.





문을 여는 그 순간이 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역할로 스스로를 갈아입을 수 있기 때문이며
오늘과 내일이 만나듯, 나와 또 다른 내가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 익선동의 어느 골목길




우리가 문의 안쪽에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을 적어두는 이유는 스스로를 갈아입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문의 바깥쪽에 우편함을 걸어 두는 이유는 우리에게 도착한 소식을 살피며 오랜 시간 입고 있었던 또 다른 나를 갈아입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매일, 내 숨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


겨울을 만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내 '숨'의 깊이를 보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도 쉽게 알 수 없는 숨의 깊이가 겨울이 되면 입김으로 드러나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숨의 깊이는 밖에서 안으로 또는 안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문 앞에 서는 순간 어느 때보다 뚜렷해진다.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최종 면접을 앞두고, 몇 년이라는 시간을 걸어둔 학교를 떠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퉈서, 잘 풀리지 않는 일들로 인해, 첫 월급을 받았기에 등등.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고르기의 과정이 문을 앞에 두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2016년 겨울, 합정동의 어느 골목길





숨을 고르며 '문'의 바로 앞까지 안고 온,
곧 만나게 될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고
이어가야 할 것들을  골라내는 것






2015년 봄, 청주의 어느 카페





한 번씩 당겨야 할 문을 밀어 여는 사람들을 보면

안쪽의 나를 빨리 만나야 할 이유가 있구나.
익숙한 공간의 포근함에 빨리 안기고 싶은 마음이구나.
내려놓을 것이 없는, 행복한 하루였구나 라고

슬쩍 넘어가 주자 






2015년 봄, 부산 보수동의 어느 골목길





아직은, 여닫는 문에 더 익숙하기에 좌우로 미는 문을 만나면 낯설지만 재미있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문이 열리며 안쪽의 공기를 서서히 느낄 수 있다는 것.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스며드는 그 맛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숨고르기를 통해서도 내려놓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숨의 깊이가 얕아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갈아입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면. 꼭 미는 문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마지막으로 열게 되는 문의 뒤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행복한 역할이 기다리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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