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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pr 11. 2016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종점'

기사님이 알려준 종점의 의미


다시, 홀로 남았다

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 두 번째의 창가 쪽 좌석에 말이다. 아침에는 출발지였는데, 이제는 종점으로 바뀐 마지막 정류장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는 나와 기사님만이 남아있다. 기사님은 라디오를, 나는 이어폰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을 각각 친구 삼아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달린다.






다시, 둘이 되었다



늦잠을 자거나 미팅 장소로 바로 이동하는 등의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보통 아침 8시 30분에 집 앞에서 출발하는 강남행 좌석버스에 오른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젯밤에는 종점이었던 곳이 출발점으로 바뀌는 아침. 집과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버스엔 어느덧 기사님과 나, 둘이 되고 남은 좌석수의 숫자에서 방금 올라탄 한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






목적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숫자



마지막 정류장을 향해 갈 때도,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에도 기사님과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한 번은 혼자라고 또 한 번은 둘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줄어들고 채워지며 달라지는 모습 때문이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리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며, 다시 둘이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출근길 텅 빈 버스가 하나, 둘 익숙한 사람들로 채워지는 모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사람이 되기도 하고, 첫 사람이 되기도 하는 상황과 출발점이 되고, 종점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하루 두 번의 작은 변화인 것이다.






때로는 혼자라고, 때로는 둘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어디까지 가세요?




보통 아침에는 피곤한 얼굴들로 버스에 오르고, 저녁에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조금은 편안한 얼굴로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내리는 나에게는 한 번씩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얼마 전, 다른 날보다 이른 '혼자'가 된 적이 있었다. 종점까지 세 곳의 정류장이 남아있었는데, 신호 대기로 만들어진 시간에 기사님이 빈 좌석을 살피며 정리를 시작하셨다. 커튼을 한쪽으로 몰아두거나, 누군가 흘리고 간 쓰레기를 줍거나, 열린 창문을 닫는 등의 일은 차고지에 들어간 이후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사님들의 노하우 중 하나이다.(종점을 향해 달리는 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이 모습이 낯익을 것이다) 그렇게 뒷좌석까지 훑어본 기사님이 나를 지나쳐 운전석으로 향하는 대신, '어디까지 가세요?'라는 질문을 전해오셨다. 흔치 않은 일이기에 혹여나 문제가 있나 싶은 마음으로 '종점이요'라는 짧은 대답을 했다. 내 얼굴에 불안감이 그대로 묻어났는지 기사님은 활짝 웃으시며 자신에겐 다음 정류장도 종점이라고, 모든 정류장을 종점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궁금한 마음에 '왜요?'라는 질문을 이어하게 되었다.





그래야, 모든 승객들을 종점에 들어갈 때의 마음으로 모실 수 있으며
종점만 바라보고 과속을 하거나, 혹시 모를 위반을 하지 않게 된다는 답을 하셨다
그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버스는 '다음' 종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날, 그 버스에 올랐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던 내게 종점은 나를 위한 '목적지'였을 테고 이전에 내렸던 사람들에게는 모두 각자가 내린 정류장이 종점이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같은 곳에서 타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기사님들의 근무 특성 상, 매일은 아니지만 그 후 한 번씩 마주칠 때면 전보다 더 환하게 맞아주신다. 그리고 나는 전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게 된다. 다음 종점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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