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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Jul 01. 2016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궁금해요, 당신의 처음에서 처음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처음이었다
아침 바다를 안고 달려본 것은







2016년 봄, 오키나와






올 4월, 위자드웍스를 거쳐 '오드엠'에 합류한 지 한 달만에 나는 운 좋게 해외 워크샵을 갈 수 있었다.

장소는 오키나와였고 마지막 날 아침, 짧은 시간이었지만 숙소 앞바다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처음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바다를 품에 안은채, 아무도 없는 바다를 달리는 경험은 분명 처음이었고,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2016년 봄, 오키나와






얼마나 뛰었다고, 숨이 차올라 조금은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보기로 했다. 그리곤 나의 지난 '처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억이 닿을 수 있는, 닿아 있는 곳부터 시작할 테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는데 오키나와에서의 '달리기'까지 돌아오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 새롭고 인상 깊었던 일들이 이렇게 없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이 깃든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처음에서 처음까지,
이렇게 짧으면 안 될 것 같은데






2016년 봄, 오키나와







그 날, 오랜만에 다시 돌려 본 나의 '처음'들은 모두 특별했던, 잊지 못할 순간과 함께 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처음이란, 그런 거야'라는 기준을 넣어둔 것처럼. 그러니, 뒤로 갈수록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의 기준으로는 앞선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새롭고, 기억할만한 '첫 경험'으로 받아들일 테니. 그렇지 않으면, 처음의 뒤는 늘 익숙함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이들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땐 호기심에 가득 차 쉴 새 없이 질문을 하다가, 점점 빈도가 줄어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






처음에서 처음까지
더 많은 기억들을 걸어두고 싶은데






2016년 봄, 오키나와






숙소로 돌아와, 넋 놓고 바라본 바다를 떠올리며 '아니 보통 바다 색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내게 던진 말은 '아니 일반적으로 바다 색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모두 각자의 기준에 맞춰 바다를 기억하고 있었고, 새로운 바다를 익숙한 기준에 따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같고 다름의 차이인데 앞선 경험들을 계속 들고 와 비교 아닌 비교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처음'이라는 사실을 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오키나와의
모든 시간이 처음이었는데






2016년 봄, 오키나와






아차 싶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로 향하는 그 시간부터 내게는 모두 '처음'이었는데. 그렇게 하나, 하나를 모두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날에서야 '처음으로'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오키나와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익숙함에 젖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뎌졌던 것 같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처음에서 처음으로 닿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을 테고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꼭 특별하거나, 인상 깊은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스스로에게 '처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데 있어 너무 인색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다짐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오드엠이라는 곳에서 처음 길러진 고양이를 만났고, 처음으로 일주일에 2-3번씩 탁구를 치고 있으며, 처음으로 한 팀의 청일점이 되었는데.






 그렇게,
조금씩,
처음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당신의 처음에서 처음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오늘도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며.










아직 세 개의 매거진도 벅차지만, 또 하나의 매거진을 써내려 갈 수 있다면

그 속에는 '나의 모든 첫 경험'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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