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열두시 Jul 10. 2016

언제부터 였을까 '로또'

당신은 어떤 종류의 로또를 만들고 있으신가요?






한 손에는 왕만두를
한 손에는 함께 파는 꽈배기를 들고
우린, 우리만의 로또를 만들고 있었다






2012년 봄, 수원 영동시장 인근의 수원천






로또를 처음 샀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번호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마치 당첨이 된 것처럼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들이 피어올랐고 방송이 시작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시작된 시간이라고 느껴졌으니 말이다. 물론 제대로 당첨돼 본적이 한 번도 없고, 늘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왔지만.


창업을 준비하며 공동대표이자 동기였던 형과 나는 수원시에서 제공하는 창업센터에 자리를 잡았고, 컵라면에 시장에서 파는 만두를 먹으며 단꿈에 빠지곤 했다. 사업계획서의 첫 장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첫 수익이 발생하면 파티를 하자, 직원이 많아지면 이런 복지를 제공하자, 우리와 같이 겁 없이 창업에 뛰어든 학생들을 지원하자는 등 수없이 많은 바람들을 서로에게 새겼다. 다음 해가 되어서야, 그 바람들이 당첨되지 않은 로또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런 과정은 우리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둘 다, 당첨되지 않은 로또였지만
 첫 번째 보다 두 번째가
내게는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만든 로또였기 때문에






2012년 봄, 수원 영동시장 인근의 수원천






매일 업무를 위한 투두 리스트를 관리하는 것만큼 공들여 써 내려가는 것이 바로 '버킷리스트'이다. 했던 일도,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이와 별개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이 바빠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기에 얼마 전, 오랜만에 나의 버킷리스트를 펼쳐보았다. 그동안 적지 못했던 내용들을 추가하며 지난날 작성한 내용도 다시 한 번 훑어봤는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미 적어 두고 깜빡했던 내용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일 년 동안 열두 권 읽겠다는 다짐이자 바람이었는데, 퇴근 후 30분을 책 읽는 시간에 쏟는 것조차 버거워진 지금에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로또를 샀던 경험과 창업을 준비하며 만들고 새겼던 우리만의 로또가 동시에 떠올랐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로만 남겨둔다면,
그렇게 메모장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첫 번째 로또와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2012년 봄, 수원 영동시장 인근의 건물 옥상






이미 시작된 일에서 다음 단계와 목표를 생각하고 바라는 것과,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을 마음껏 그려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작성한 것일 뿐 그 이상 파고들지 못한, 무책임한 버킷리스트를 통해서 말이다. 


글을 쓰다, 커피 한잔을 내리며 친구에게 '너의 버킷리스트는 뭐야?'라는 짧은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진한 커피에 얼음 몇 개를 넣어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로부터 답장이 도착해있었다. 이번 달은 '여름을 피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 술한 잔 편안히 마실 수 있는 장소 찾기!' 그리고는 바로 '꿈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던 적은 없다. 꿈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라는 만 레이(Man Ray)의 말을 전해주었다. '여름에 시원하게, 마음 편히 술한 잔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더위에, 사람에, 일에 치일 때, 그곳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봐. 어때? 좋지?' 


그녀에겐 장소를 찾는 것이 '로또' 그 자체였으며, 특정한 상황에서 그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당첨금이자 보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버킷리스트들은 이처럼 명확한 보상이 존재했고, 하고 싶은 일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이어지는 간격이 넓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로또가
진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스로 보상을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더 자주, 달콤한 꿈을 꾸며
앞으로 나아가 닿을 수 있다는 것






2012년 여름, 동네 공원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는 데 있어 두 가지를 꼭 생각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창업을 하면서 만들었던 나만의 로또. 두 번째는 그녀가 내게 전해준 이야기. 









당신은, 어떤 로또를 만들고 있나요? 그리고 거기엔, 어떤 보상을 담아 두셨나요?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얻을 수 있는 로또가 점점 더 많아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