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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Sep 04. 2016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이사'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변화






성규야, 
이사 가고 싶어!






2016년 봄, 양재동의 어느 카페






뜬금없이 전해진 그녀의 말에 벌써 계약 기간이 끝난 건가, 그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기간이 남았다며 그곳만 한 조건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럼, 왜? 라는 내 물음에 그냥 정리가 하고 싶어 졌다고,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이사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꽉 차버린 물건들도 하나씩 정리하며 그렇게 홀가분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다급해 보이진 않았지만
이사를 가고 싶은 이유를 하나씩 설명하는 그녀를 보며,
언젠가 라디오에서 매일 이사 가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던 누군가의 사연이 떠올랐다.






2016년 봄, 출근길






그녀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이직 후, 며칠 동안 동네를 헤집고 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출근길에는 이쪽으로- 퇴근길에는 저쪽으로- 신나게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을 알아가는 맛을 느꼈던 날들이 말이다. 전 회사에 두고 온 날들과, 어렵사리 찾아둔 나만의 공간들과 멀어졌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그 과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집, 사무실 그리고 다시 집, 사무실이라는 쉽게 바뀌지 않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낼 여유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출, 퇴근 시간의 일탈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니 그녀가 말한 '이사'도 
비슷한 의미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머무는 공간과 오가는 방법이 통째로 바뀌는 '이사'는
그녀에게 정말이지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매일 이사하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던
라디오 사연의 주인공은, 내 친구보다 더
다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2016년 여름, 양재동의 어느 카페






나도, 
이사 가고 싶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전활 걸어 말했다. 나도, 이사를 가고 싶다고.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집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사 갈 거야?

아니!

그럼? 정리하고 싶다며 - 

그냥, 투정인 거 알잖아 퓨-

그럼 우리, 이사 같은 무언갈 해볼까?

뭐?

글쎄-

너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가?

내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좋지, 좋다

자주 가는 곳 말고

그럼 어디?

그냥, 새로운 곳.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 말고, 다른 곳

그래, 그러자 - 






2016년 여름, 어느 화장실






얼마 전, 문득 청소를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통한 정리가, 지루함을 달래줌과 동시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2시간인가, 열심히 방을 청소했는데 생각만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2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날 내게 필요했던 것은 어떤 큰 변화라기 보다 다른 것에 집중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며,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이 단순한 투정 아닌 투정으로 들렸던 이유는 지난날(앞서 말한) 청소를 하면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네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후, 이사를 가고싶다는 말은
우리만을 위한 표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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