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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ug 26. 2016

그때, 그 찰나의 순간 'am 7:00'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그래서 더 감미로웠던 순간


다섯 번째 알람을 듣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깼다. 그렇게 일어난 시간은 새벽 3시 30분으로, 평소보다 4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이유는 바로 독일과의 올림픽 축구 예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참 애매한 시간이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축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며 커피 한 잔을 내려 TV 앞에 앉았다. 활짝 열어놓은 창밖으로 틈틈이 들려오는 환호성과 탄식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일어난, 또는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 여럿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창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본 독일전은 3:3 무승부로 끝이 났고, 잘 싸웠다는 생각으로 TV를 끄고 방으로 돌아왔다.


올 3월부터 근무 중인 오드엠(ODDM)의 출근시간은 열 시. 여섯시 전에 축구가 끝났으니, 출근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다시 잠들 수 있었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탓에 몸은 피곤했지만, 그날은 바로 집을 나서기로 했다. 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며 확인한 시간은 여섯시. 참, 오랜만이었다.



 



얼마만이야, 이 시간
늘 여덟 시가 되어야 켜졌던 하루의 스위치가
유난히 빨리 눌렸던, 그날의 아침






2016년 여름, 그날의 아침






창업을 했을 때도, 이후 몇몇 스타트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나의 출근시간은 언제나 아침 열시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날의 새벽은 모든 것이 '오랜만'이자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4호선 열차에 오르며 다시 확인한 시간은 여섯시 이십분. 평소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시간이라며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나는, 잠들어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의 틈에 섞여 묘한 이질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버스, 플랫폼 그리고 열차까지
모든 것이 같았지만, 유일하게 달랐던 그날의 시간은
앞선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마지막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역에 내린 시간은 일곱시였다. 그렇게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모습들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스며들기 시작한 빛을 맞으며 나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2016년 여름, 그날의 아침






양재시민의숲 근처에 있는 사무실은 버스정류장에서 7-8분 정도 걸어야 닿을 수 있기에,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엔 달갑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거리가 짧아 보이는 곳을 찾아보기도 하고 조금 돌아가지만, 가까운 곳에 내릴 수 있는 마을버스를 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늘, 이미 깊게 파고든 빛에 익숙했던 날들이었는데, 시간이었는데, 길이었는데. 빛이 닿은 곳보다 닿지 않은 곳이 많았던 그날의 시간에는 되려 빛을 하나씩 짚어가며 정해진 시간 이상을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인데, 이만큼이나 걷고 있어- 라는 혼잣말을 하며.






새벽 7시, 갓 태어난 빛을 만나는 시간
무언가로 가득 채워질 앞으로를 기대하는 시간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반가운 존재들을 짚어가는 시간






2016년 여름, 그날의 아침






골목길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다. 빠르게 옆을 스쳐가는 트럭도 없고, 남몰래 다가와 위협하는 날 선 경적 소리 또한 없다. 덕분에 주변을 아주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다. 올 봄, 어느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난 모습은 빈병뿐만 아니라 함께 쌓아 놓은 낯선 이들의 추억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걸음이 조금만 빨랐더라면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였을까 '골목길' 중)




걸음이 느린 아이가 될 수 있는 골목길과는 또 다른 느낌. 새벽 일곱시의 길이 그랬다. '이렇게 드리우기 시작하는구나, 어둠 속의 모습은 많이 다르구나' 걸음수가 늘어날수록 지나온 길에 비해 빠르게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내겐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준비된 모습이 아니라, 준비하는 모습을- 그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니 더더욱. 유난히 빨리 눌렸던 하루의 스위치는 피곤함 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내게 선물해주었고, 1분이 다르게 깊어지는 빛의 변화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빛이 차오르는 모습을 본 적 있어?
누군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새벽에 말야, 평소보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서 말야
익숙한 길을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연스레 느려지는 발걸음을 느낄 수 있을거야-
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 입구에 도착하니, 그믐달을 좋아했던 그녀가 생각났다. 초승달과 달리 새벽녘에 뜨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고, 그래서 만나면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던 그녀가 말이다. 그날 내가 눌렀던 스위치는 어제와 같은, 반복되는 아침이 아니라 '그믐달'과 같은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 커피를 사러 가까운 카페로 향하는 길에는 이미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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