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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pr 01. 2017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책상'

자꾸 잊어버리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






2010년 5월 26일
아빠가, 아들을 위해!











작년 12월, 가족과 함께 떠난 5박 6일간의 태국 파타야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수상시장'이었다. 악어 고기를 포함한 다양한 먹거리는 물론, 물 위 새겨진 매력적인 골목길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가게마다 나무로 직접 만든 탁자와 의자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정도를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 새우와 돼지고기 요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앞서 먹은 것들을 잊은 채 무언가에 끌리듯 그곳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요리를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같은 듯 다른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2016년 겨울 태국 파타야, 수상시장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탁자와 의자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문득 2010년 5월 26일부터 함께 하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쓴 메시지가 안쪽에 새겨진 책상이 생각났다. 한쪽에서는 노트북 작업을, 한쪽에서는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ㄱ'자 모양의 책상을 찾고 있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직접 만들어 주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손수 가족들을 위한 가구들을 하나씩 만드셨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쓸 책상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이찼다.











책상을 위한 재료들이 하나, 둘 도착했던 어느 따스한 봄날.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던 나와 달리 아버지는 이미 머릿속에 모든 것을 그려 넣으신 듯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책상을 지탱해줄 다리가, 다리를 벗삼아 노트북과 모니터 그리고 책들을 얹어둘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조수 역할을 하겠다며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우와 - 우와 -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뿐이었다.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쏟아 완성된 책상은 기대 이상이었고, 아버지는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펜'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한 글자, 한 글자 날짜와 함께 아들에게 남기는 짧지만 소중한 메시지를 끝으로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책상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나밖에 없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한 유일한 마음이 담겨 있어 소중한 것










이후로도 아버지는 취미라고 하기엔 더 정교하고 전문적인 가구들을 만드셨고, 나 역시 아버지 옆에서 과정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며 더 똑똑한 조수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봄이면 더없이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는 외할머니댁 마당의 테이블도, 햇살을 가득 안을 수 있는 이모의 화실 창가 아래 의자도 아버지의 손으로 시작해 아버지의 손으로 모두 만들어졌다. 나무 사이로 삐져나온 잔가시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아버지의 작업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설렘과 함께 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겐 늘, 쓸 사람이 먼저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책상 밑에 앉아서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당연하게 앉아, 아무렇지 않게 썼던 책상이었는데 -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를 잠시 잊고 지냈던게 아니었나 싶었다. 나라는 흔적이 매일 더해질수록,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만들어진 책상이 보다 더 가치있게 쓰일 수 있도록 그 소중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지 오래되고
시간이 쌓여서가 아니라
매일의 가치가 하나씩 더해졌기에
더욱 소중해질 수 있도록












책상 위의 불을 끄려는 순간, 책상 한쪽에 자리잡은 휴대용 공기청정기가 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가 점점 심해진다며, 잠을 자는 공간만큼은 깨끗해야 한다고 선물로 받았던 제품이었다. 잘 나온 사진이라며 서로 가져가겠다고 옥신각신했던, 전북 익산에서 들고온 즉석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도 좋지만, 펜으로 쓱쓱 메모하는 습관만큼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건내받은 노트도, 나한테 배울게 많았을지 모르겠다며, 나로 인해 그렇게 하면 안되겠다는 것만 확실히 가져가라는 인사와 함께 가져온 사수의 명함도 모두 그대로 있었다. 아버지의 책상에서 출발해 잠시 주위를 둘러봤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내 방에 스며든 의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게, 그런 것도 있었지
내 방의 구석구석 새겨진
소중한 것들이 이렇게 많았지






그러니, 더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

책상에 앉을 때면, 공기청정기를 켤 때면, 명함 지갑을 열 때면, 노트를 펼칠 때면

바로 뒤돌아 다른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나를 향한 포근함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더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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