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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27. 2018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동생의 결혼'

'잘 다녀와-'라는 말에서, '그때 보자-'라는 인사로






모두의 처음이자,
모두의 마지막이 될 시간들





2017년 11월 11월의 아침






거실 한쪽으로 밀려난 탁자 대신 네 명이 누울 이부자리가 펼쳐졌고, 모두가 누운 걸 확인한 뒤 불을 껐다. 

'내일이네, 벌써'라는 한 마디가 찰나의 적막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이내 잔잔한 시간이 이어졌다. 우린 그렇게 모두의 '처음'을 앞둔 밤을, 모두의 '마지막'이 될 밤을 보냈다. 






2017년 6월 제주도 - 첫 번째, 마지막 가족여행






다이어트 중이라며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의 유혹에 못 이겨 치킨을 주문하고는, 이내 왜 안 오냐며 투덜거렸던 남매. 일요일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늦잠을 자고 TV 앞에 앉아 소파의 가장자리 가장 편한 자세로 종일 TV를 보고, IPTV를 통해 프로그램 다시 보기를 선택할 때면, 왜 혼자 봤냐며 투덜거렸던 남매. 우린 나의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오래 떨어져 본 일이 없었고, 나름 서로에게 잘 녹아들었던 남매였다. 


그런 동생의 결혼이었기에 나는, 그런 딸이었기에 부모님은 서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점점 우리의 공통된 시간에 더 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2017년 6월 제주도 - 첫 번째, 마지막 가족여행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실감을 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작년 3월의 '상견례'였다. 그날 이후로 모두의 '처음'과 모두의 '마지막'을 의식하고 구분 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2017년 8월 삼척 - 두 번째, 마지막 가족여행






6월, 8월, 10월 
마지막이란 아쉬움에 떠난
세 번의 마지막 여행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었다. 작년 8월 말 퇴사를 했으니 10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차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혼여행을 앞두고 쉽게 휴가를 쓸 수 없는 동생이었다. 그래도 우린 2달 간격으로 이번이 마지막이겠네, 이제 넷의 여행은 어려울지도 몰라, 라는 말을 하며 3번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계절과 상황에 따라 어릴 때부터 자주 가족 여행을 떠났던 우리지만, 이렇게 2달에 한 번씩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다. 



결국엔, 끝과 만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
아쉬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세 번의 마지막 여행






2017년 10월 울산 - 세 번째, 마지막 가족여행






처음이 잦아질수록, 마지막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하루 걸러 하루를 돌이켜보게 되고, 다시 또 일주일과 한 달을 되돌아보게 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동생의 빈자리가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많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두 사람이 마음 맞는 대로 촬영한 사진들을 처음 봤던 날, 매제와 처음으로 단 둘이 카페에 마주 앉았던 날, 오빠라는 호칭이 겹쳐 나와 매제 동시에 대답했던 날. 그날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며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치맥,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러 떠난 마지막 쇼핑 그렇게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다시, 2017년 11월 11일 그 날의 아침






눈을 뜨니, 동생은 이미 식장으로 떠난 뒤였다. 홀로 뒤척이며 소란스러운 밤을 보낸 탓이었다. 다행히 곳곳에 햇살이 스며든 따스한 날이었고, 우린 동생이 먼저 밟았을 길을 따라 식장으로 향했다.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입구에서 한 분, 한 분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어느새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렇게 11월 11일 11시 동생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2017년 11월 11일, 그 날의 아침






식이 끝나고, 부모님과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곤 한편에 마련된 자리에 가족들과 함께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배도 많이 고팠고, 긴장도 풀려 의외로 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헛헛한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느낌.


집으로 돌아와 동생의 방앞을 서성거리다 문을 열었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짐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동생의 결혼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잘 다녀와, 저녁에 보자!
-
잘 갔다 와, 그 날 보자!






그날 저녁, 신혼여행을 떠나기전 동생과 매제가 집에 들렀다.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고 몇 가지 짐을 더 챙겨 문을 나서는 두 사람에게 나는 조금 다른 인사를 해야했다. 이제는 함께 볼 날을 정해야 볼 수 있는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말이다. 












동생이 결혼했다. 갓 100일이 넘었고, 두 사람은 즐겁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방의 위치가 바뀐 것을 포함해 또 다른 '처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날의 헛헛함이 조금씩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 순간을 느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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