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또 다른 역할을 잊지 않게 해주는 '알림'이자, '달콤한 속삭임'
어디가?
방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출근길도, 퇴근길도 아닌 거실에서 잠깐 방으로 향하는 걸음.
그날은 야근에, 새찬 비에, 연달아 놓친 버스까지 더해져 밤 열한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먼저 주무세요, 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씻기 전 나는 엄마에게 다시 한번 그 말을 전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여전히 부모님은 거실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슬며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일할 때 쓰는 안경이 독해, 편하게 쓸 수 있는 안경을 가지러 잠깐 일어나는 순간 들려온 한 마디. 어디가? 엄마의 목소리였다.
잠깐 방에 갔다올거야! 라는 말에,
그래! 라며 순간의 아쉬움을 삼키는 엄마
나의 출, 퇴근 시간은 넉넉잡아 1시간 30분. 산본에서 양재까지 평균 거리로 따지면 멀지 않은 거리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큰 의미가 없다. 전철만으로 닿을 수 없는 곳이기에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일을 바로 마치고 오더라도 거진 9시가 되어 버리곤 한다. 매일 바뀌는 도착시간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엄마는, 아빠는 늘 거실에 앉아 나를 기다린다. 퇴근을 하는 나를, 씻고 나올 나를, 그 옆에 앉을 나를.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아쉬움은 배가 된다.
오랜 기다림에 비해
함께 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렇게 시작된 한 마디
어디가?
하루의 마무리와 시작을 동시에 하며 생각을 갈아입을 수 있는 밤 열두 시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순간은 바로 '문'앞에 서는 때이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문의 역할이 스스로를 갈아입는, 하루 중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딸과 아들에서 학생이자 신입사원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에서 각자의 또 다른 역할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 였을까 '문' 中
혹여나, 거실이라는 교집합에서 내가 금세 빠져나가진 않을까. 서로의 품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곤, 다시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문을 열고 닫지는 않을까. 집으로 들어오는 문을 열며 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던 것 같다.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순간, 나는 한 기획자에서 아들로 역할이 바뀌는 것이었는데. 그 마음을 엄마와 아빠는 '어디가?'라는 표현으로 드러낸 것이다.
나는 정말 경쟁력 있는 사람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매일 아슬아슬한 나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요즘. 작은 틈마저, 실수가 아닌 실패라 말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한 시간들로 채워지는 하루하루. 퇴근 후, 역할 변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어나가야 할 일들이라며 홀로 방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진 날들.
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해줄 수 있는 작은 틈이 있다고 한다. 치열한 시간 속, 미세한 틈이 누군가 나를 파고들 수 있는 치명적 단서라 생각해왔던 내게 엄마의 속삼임은 오늘의 나를 더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은 아닐까. 나의 역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진.
내게 엄마의 '어디가?'는
나의 또 다른 역할을 잊지 않게 해주는 '알림'이자,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당신을 잊지 않게 해주는 속삭임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