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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Jan 06. 2021

언제부터 였을까 '여행'

어딜 보아도, 처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






이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아무렴 어때! 어디든, 새로운 길인데!






2019년 12월, 프랑스 - 파리






포르토, 바르셀로나, 파리. 그중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의 매력을 느낀 우리는 정오의 에펠탑을 보기 위해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가능한 구석구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걸음이 잠시 멈칫한 건 지도 앱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그 길이 맞아?라는 말을 내뱉었고 그녀는 아무렴 어때! 라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습관이 참 무섭네.라는 말을 뒤로한 채 나 역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녀를 따라 걸었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있던 우리는 시간을 잠시 뒤로 돌렸다. 밤이었다면 조금은 위험했을 법한 골목을 지나왔잖아. 우리의 구멍가게 같은 상점도 들렀지. 무엇을 찾냐며 괜히 말을 걸어준 할아버지가 반갑기도 했고, 유모차를 끌며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어. 목적지만 생각하고 왔다면, 덜 선명하지 않았을까? 응, 피어오르는 잔상도 적었을 거야! 이렇게 헤매며 도착하는 것도 좋네. 응, 그게 여행이잖아. 






잊고 있었다.
정해진 길을 모르기에 
정해진 길을 마음껏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라는 사실을






2019년 12월, 프랑스 - 파리






여행을 다니며 내게 주어진 역할은 늘 비슷했다. 여행지를 정하고, 둘러볼만한 장소와 맛집을 찾아 최적의 동선을 설계하는 것. 결과적으로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앞서 계산한 것과 잘 맞아떨어지도록 하는 것. 자주 떠날 수 없는 여행이라는, 언제 또 올 수 있겠냐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난 목적지에 머물면서도 다음 장소를 생각할 때가 많았고, 스마트폰과 지도를 더 많이 들여다보곤 했다. 한 걸음, 한 모금 모든 것이 새로운 여행인데 나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카페에서 현지 스냅 작가를 만났다. 반가운 인사 뒤, 그는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자신에게 잠깐 맡기는 게 어떻겠냐며 웃었다. 괜한 긴장감에 반사적으로 왜요?라고 묻는 내게, 조금 후에 이유를 알게 될 거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우린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그곳을 나섰고, 포근한 햇살에 안긴 파리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것 같아
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지?
응, 이렇게 자유로운 시선 참 오랜만이야
매일 고정된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어느 한 곳만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매일 고정된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2019년 12월, 프랑스 - 파리






어땠어요? 보통이라면 촬영의 결과물이 궁금해 먼저 건넬 말이지만, 이번에는 작가에게 먼저 듣게 된 말이었다. 어땠어요? 지난 며칠보다 지금의 2시간이 우리에겐 파리를 기억하는 전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진에 그대로 담겼을 거예요. 촬영을 한다 생각하면, 누구나 의식하게 되는데 걷는다 생각하면 주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러게요. 있는 그대로 즐겼어요. 감사합니다.


헤어짐 뒤에도 우린 한참을 더 걸었다. 숙소로 돌아와 살펴본 걸음 25,000. 한 걸음에 한 장면씩 담았다 생각하니 꽤 많은 조각들을 모았겠다 싶었다. 이만 오천 개의 조각이라면, 목적지에 향하기 위한 발걸음보다 훨씬 오래 기억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여행에 걸음이 필요한 이유를, 그 걸음엔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시선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모여졌다, 흩어졌다
춤을 추는 시선들
우린 그렇게 꿈속의 파리를 즐기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아직도 생생한 건 그날의 걸음에 담겼던 조각들이다. 

다음의 여행과 걸음엔 우리의 시선이 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조각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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