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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Dec 21. 2020

언제부터 였을까 '우리'

나에서, 우리로 바뀐 주어






집으로 돌아와 동생의 방앞을 서성거리다 문을 열었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짐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동생의 결혼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혼여행을 떠나기 전, 잠시 집에 들른 동생에게 건넨 인사는 그렇게 낯설 수 없었다. 잘 다녀와, 저녁에 보자! 에서, 잘 갔다 와, 그 날 보자!로. 






2019년 12월, 포르투갈-포르토






다녀올게요.
아, 또 올게요!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혼자가 아닌 둘이 찾은 본가. 수저 세트가 하나 더 놓이는 등 모든 게 2배가 된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것은 인사말이었다. 집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꺼낸 말. 며칠 후에나 오게 될 텐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문인데 이제는 시간을 내 찾아와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동생의 결혼 2년 뒤, 나 역시 결혼을 했다.


퇴근길, 맛난 저녁을 함께 먹을 생각에 신나게 정류장으로 향했고 늘 타던 좌석 버스에 올랐다. 금방 눈치챘어야 하는데,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수원이 아닌 산본으로 진입하면서 깨달았다. 아, 내가 본가로 가는 버스를 탔구나. 곧이어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나는 여보세요? 대신 반가운 마음에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야. 저녁은? 이란 말을 인사말로 대신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말, 한 서방 - 아, 어머님께 걸려온 전화였구나.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큼 많은 것이 다시 낯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낯섦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 결혼이었다.  







2019년 12월, 포르투갈-포르토






우리에게도 처음이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잠들기 전 등 보고싶은 마음을 목소리로 전하던 우리에게 얼굴을 보며 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같은 회사에서, 다른 회사가 된 뒤로는 일주일에 한 두번 보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매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전화를 끊기전 잘자 - 라는 말 대신 언제쯤 도착해? 저녁 뭐먹을래? 라며 곧 만날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 늘었다. 






2019년 12월, 포르투갈-포르토






우리, 로 바뀌었네
응?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바뀌었다고!






자주 쓰지 못하는 글이지만, 겨우 겨우 숨을 불어넣는 사람은 늘 '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너그럽지 않은 시간'을 읽은 후 '내'가 '우리가'되었다는, 주어가 달라졌다는 말을 건넸다. 물론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시작된 이야기였기에 더 그렇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생각해보니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더 많이, 먼저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들 역시 꼭 '우리'를 함께 물었다. 너희는 밥 먹었니? 둘은 뭐해? 두 사람은 괜찮지? 그럼요, 우린 괜찮으니 걱정마세요. 우리도 저녁 먹었어! 저희도 이제 막 출발해요. 각자에서 우리로, 그렇게 우린 결혼을 했고 그렇게 우린 오늘도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경험하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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