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쉽게 잊게 되는 나날들
이 날 하늘이 참 선명했어.
응? 그 날 흐렸잖아.
그래서 비 오면 어쩌지- 하면서 걸었잖아. 기억 안 나?
처음엔 기억이 흐릿해진 줄 알았다. 함께 보고 있던 사진이 고작 1년 전 촬영된 것이란 사실을 알고는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 날의 옷차림까지 기억하던 나였는데, 왜 그 날의 하늘은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녀의 설명 끝에야 나는 아, 그래 - 그 날 그랬지. 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갔지만, 그렇게 머무른 사진 한 장. 분명 흐렸는데, 다시금 선명해진 사진 한 장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저 흐린 하늘이 싫어, 조금 더 밝고 선명하게 보정된 사진이었고, 더 나은 - 이란 말로 금방 분위기가 바뀐 결과물이기도 했다. 또, 그 날의 이성에 덧씌워진 나의 감성이기도 했다.
문득,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리고 괜찮은 걸까 싶었다.
늘 나와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주는 '사진'이었고, 잠시 그때로 돌아가 그 날의 온기까지 전해주던 연결고리였기에 자칫 왜곡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됐다. 말하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반은 거짓말이라는, 어쨌든 숨기는 거라던 <보통의 존재>의 내용처럼 나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까운 거리의 추억은 더듬. 더듬. 어떻게든 선명히 다가오지만, 먼 거리의 추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우리로부터 시작된 추억이,
우리로 인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억이라는 원본에 섬세한 감정을 덧씌우는 과정. 우리는 보정을 그렇게 맞이하지만, 그 둘이 잘못 압축될 경우 우린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고, 그날을 응시하던 우리의 모습을 잃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발견한 옛 사진에, 생생히 기억난다고- 이 때 참 좋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날 모두가 가려질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공들여 우리의 시간을 매만지는 '보정'의 시간을 버리고 싶진 않다. <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중> 에서 '걷기는 시간을 버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하게 잃는 일이다. 더는 시간에 사로잡히지 말고 천천히 여유를 갖는 일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시간을 공들여 매만지는 '보정' 이 얼룩을 묻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감성을 증폭시켜줄 수 있는 '덤'과 같은 과정이고, 시간이 되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보니,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던 내가 대상을 조금 더 깊게 담아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카메라를 감정의 압축기라 표현했던 때가 생각난다. 하루, 이틀이 지난 뒤 그 압축된 감정과 이야기들을 다시금 풀어내는 순간만큼 내게 황홀한 때도 없다는 말도 함께. [언제부터 였을까 사진 #2 중]
다음의 압축들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되,
우리의 시간이 더 깊게 엮여있길 바라며.
우리 손에 들린 필카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순수한 우리의 감성을 있는 그대로 묻어나게 해주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