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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Nov 20. 2018

언제부터 였을까 '그림자'

 






빛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 중, 내게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감정은 '질투와 시기'다. 어디든 스며들 수 있으며,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는 '부러움'으로 시작된 질투와 시기. 그렇게 스며들고, 그려내고, 상대방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내는 존재. 내게 빛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색을 만들어내는, 우리 주변의 가장 찬란한 조연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 였을까 '빛' 중)






빛의 끝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빛과 함께 소멸되기도 하며,
빛에 따라 매일의 흔적을 달리 남기는
그림자 역시 금세 나를 매료시켰다






2018년 가을, 양재






매일의 흔적을 수집하는 일은, 내게 '글쓰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순간순간을 '시각적' 요소로 담아두고 그때의 기억을 재편집하는 일이 부족한 내 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출근길에 마주치는 대상들이 한정적이라는 점과, 계절과 날씨와 같은 변수가 없는 이상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 정해진 것들이 대부분인 우리의 삶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우연을 만나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밤새 나눈 만큼 쌓여있는, 누군가의 추억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한다거나 어제와 다른, 바로 옆길로 빠져나가는 소심한 일탈을 하거나, 매일의 익숙함을 벗어내기 위한 산책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내게 매일의 흔적 속에서
매일이 다른 흔적을 만나게 해준 것이
바로 그림자였다.






2018년 봄, 인천






빛이 그려낸 그림이자, 빚어낸 다채로운 조각. 그림자로부터 시작해 빛을 만나고, 빛으로 시작해 그림자를 만나는 것. 저마다 수줍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 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기에 만날 수 있는 것. 바다와 육지처럼 닿을 순 있어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는 관계도 있지만, 서로를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가 내게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2018년 가을, 양재






어떻게든 시작된 하루에,
어제와 또 다른 선명한 흔적을 더하는 즐거움.






어둡고 잘 드러나지 않기에 몰랐을, '곳곳'에 남겨진 선명한 흔적들. 그림자만 놓고 보자면 명확한 색과 모습이 없을지 모르지만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만큼 살가운 운 시간도 없다. 떨림만큼이나 빨리 사라질 순간이지만, 내일 같은 시간에 오더라도 되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짙은 잔상과 여운으로 남았다.






2018년 봄, 인천






봄바람에 춤을 추는 나무





나무보다 먼저 내 시선이 닿은 곳은, 어느 철문이었다. 투박하지만 밝은 옷을 입고, 벽돌로 지어진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철문에는 바람에 몸을 맡긴 나무의 그림자가 포근하게 안겨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몸짓이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자 앞에 선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몸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춤을 나눌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골목길, 의자, 빛, 열차, 카페와 커피, 사진, 문
그리고 그림자.
같은 매일에, 다른 매일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대상들이 늘어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오늘의 당신도, 내일의 당신도.

더 선명한 매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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