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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Nov 29. 2015

언제부터 였을까 '사진'#2

사진, 그 속에 담긴 두 번째 이야기들

이번에는 몇 장이나 찍었어?
잘 나온 거 많아?



어쩌면 나는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말했기에 그 과정에 충실하고자 찍는데 열중한 나머지, 집에 돌아와 스크린에 사진을 띄워 볼 때에야 그 곳을 제대로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여행지라면 여행지의 진짜 모습을, 골목길이라면 골목길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 말이다.    



언제부터 였을까 '사진' 첫 번째 이야기 중,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무엇을, 왜 찍는지 보다 우선 찍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담는 방법들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고, '사진'과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감정'과 '이야기'라는 내가 사진을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




카메라가 아닌 감정의 압축기


카메라만큼 정직한 것도 없지만 반대로 그만큼 교활한 것도 없다는 생각은 그 뒤였다.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담는 방법을 알게 된 후로 말이다. 전자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담아냈을 때, 후자는 내가 본 것과 다르게 표현되었을 때 내뱉는 말. 사실, 이 둘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뿐 모두 맞는 말이다. 찰나의 순간을 마주함에 있어 하나의 감정만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 사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맞지 않거나 조금 늦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진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


대상을 담기 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달라진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 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이 재미있는 이유는 전시장을 찾아 작가의 작품을 함께 보더라도 해석이 달리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사진을 담는 사람도 감정에 따라 전, 후에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으며, 사진을 보는 이도 같은 과정을 거치며 여러 이야기가 곁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카메라가 아닌 압축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과, 그 곳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로 압축해낼 수 있기 때문에




2013년 겨울, 서촌의 어느 골목길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시네큐브에서 홀로 영화를 보고 전시까지 즐긴 뒤 오랜만에 서촌을 찾았다. 지금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2013년의 서촌이었으며 평일이었기에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훑어볼 수 있었는데 대오서점 근처의 어느 가게 앞에서 앉는 곳이 모두 뜯어진 의자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곳곳에 스며든 빛이 좋아 담았는데, 보면 볼수록 의자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고, 앉았으면 그 부분만  내려앉았을까. 그리고 왜 이 곳의 주인은 그 의자를 문 앞에 내려놓았을까.





앉고, 앉고 또 앉아
그렇게 사람이 쌓이고 기억이 쌓이고 시간이 쌓여 그대로 두었을 테지
더해질 순 없어도 계속해서 느낄 순 있을 테니






2015년 11월, 신사동 가로수길의 어느 골목길




얼마 전, 2박 3일 일정의 스타트업 위크엔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신사동 어느 골목길 담벼락에 놓인 장화와 그 속에 담긴 꽃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박 3일과도 같았던 일정에 지쳐있었고 장화에 담긴 꽃들이 많이 시들어 있었기에 눈으로만 담고 지나치려고 했었다. 그러다 장화들이 모두 내가 걷는 방향과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번에는 장화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에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향을 담아낼 수 있는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2015년 11월, 대만 가오슝 보얼 예술 특구




타이베이 보다 더 인상 깊었던 대만의 가오슝.  그중에서도 오래된 철도기지와 공장들을 하나로 묶어 예술 특구로 만들어 놓은 '보얼 예술 특구'는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어느 길로 들어서도 모두 다른 모습으로 우릴 반겨주던 이 곳.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빛의 끝자락이 걸쳐 있는 샛길로  접어들었고 누군가가 그려놓은 벽화를 양쪽으로 볼 수 있었다. 좌측으로는 진짜 벽화를, 우측으로는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모습의 벽화를 말이다.





비친다는 게 때로는 대상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이렇듯 직접 바라봤을 땐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지만 같지 않았던 두 개의 벽화






2015년 11월, 대만 가오슝 장미성모대성당의 유치원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내려 가오슝으로 향하는 고속철도를 통해 봤던 대만의 모습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주차장 위에 강한 빛을 차단하기 위한 가림막들이 대부분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보다 더 강한 빛을 매일 마주하고 있을 테니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아직 내게는 낯설게 다가왔던 둘째 날. 대만 최초의 성당인 장미 성모 대성당에 소속되어 있는 유치원 한편에도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그랬던 것일까. 이 곳의 가림막은 형형색색 기존의 것과 많이 달라 보였다.





좋겠다 요 녀석들은
매일 같이 무지개를 볼 수 있으니







대상을 마주하는 순간의 감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함께 담아내면서부터,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내게, 가장 황홀한 순간은 압축해 놓은 것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과정이며 그 순간의 합이 더 많아지기를 매일 같이 바라며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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