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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Nov 12. 2015

언제부터 였을까 '사진'

사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얼마 전, 미국에서 한 영화의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는데 현장 사진이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곳에 몰린 사람들은 스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 등 저마다를 위한 '찍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은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현장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 마음대로 평가할 순 없지만 할머니의 표정을 보며 다시 한 번 '사진'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었다.




찍고, 찍고 또 찍고


9년 전, 스무 살 새내기였던 그때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제품은 '카메라'였다. 조금 늦어졌지만 전역하던 해 처음으로 DSLR 카메라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출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씨네21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학교보다 더 열심히 다녔고 책을 구매해 독학을 하기도 했던  그땐,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촬영하는 게 즐거웠다.


1년 정도를 그렇게 지냈을까. 남겨지는 사진보다 지워지는 것들이 많아지고, 사진들을 보며 내가 왜 이 장면을 찍었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록된 정보를 띄우지 않고는 어디에서 촬영한 건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던 것 같다
무엇을, 왜 찍는지 보다 우선 찍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찍는 것이 아닌, 담는 방법을 알게 되다


그 뒤로, 나는 2015년의 그 '할머니'를 닮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정확히는 카메라 렌즈 대신 나의 눈을 통해 보이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일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설사 순간을 놓친다 하더라도 먼저 대상을 바라보고 느껴보고자 한 것이다.



언제부터 였을까 '창문' 중,

처음엔 쉽지 않았다. '천천히 걷자'라는 의식적인 행동이 '빠르게 걷기'라는, 이미 몸에 진하게 배어 있는 습관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다 마침내 나는 길을 걸으며 좌, 우를 살펴보는 방법 대신 아예 보고자 하는 대상과 마주하는 것이 걸음을 늦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011년,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어느 골목길




예전과 같았다면 더 예쁜 것을 담기 위한 여정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종로의 어느 골목길. 다행히 2011년의 그 날은 조금 더 천천히 걷고, 대상을 하나씩 뜯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터라 놓치지 않았다. 외로웠던 탓인 그때 사진 속 두 전선의 만남이 내게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처럼 다가왔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사진을 '담는'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동적인 대상이었다면 놓쳤을지도 모르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날 나는, 두 개의 전선을 찍은 것이 아니라 놓칠 수 없다는 듯, 깍지를 끼고 있었던 두 개의 손을 담을 수 있었다



2015년, 양재동의 어느 골목길




'첫 경험'을 하고 나니 두 번째, 세 번째 '담기'는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그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평일 출근 시, 나는 좌석급행버스와 마을버스를 타는데 일주일에 1-2번은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 앞서 벨을 누른다. 지난 화요일에도 앞선 정류장에서 내려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지하 주차장의 입구 한 부분에만 빛이 들어 앉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절묘하게 출구(비상구)를 알리는 곳만 밝게 비추는 모습에 얼마 전 친구가 아무런 설명 없이 '힘들다'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달리기를 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지시등'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다면, 아주 환하게 누구든 찾아갈 수 있도록 밝혀둬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내일 보면, 내일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일 지하주차장
모레 보면 모레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어제의 사진
꾸깃꾸깃 감정을 담아놓으니 생기는 일들
 




2015년, 양재동의 어느 골목길




지하주차장 입구를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낮은 빌라들 사이로 난 작은 길 옆으로 전구들이 보였다. 포근한 낙엽을 베개 삼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바깥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든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선 말이다.




2015년 합정의 어느 골목길




지난주, 대표님에서 동생으로 바뀐 재밌는 인연을 만나기 위해 찾은 합정. 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 틀에는

여러종류의 화분이 놓여있는 가게를 보게 되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공간이 아닌 밖과의 경계에 해당하는 공간에 꽃을 놓아둔 것이다. 게다가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혹여나 그냥 지나쳐버릴까 작은 등을 함께 달아둔 것을 보며 이 모든 것을 준비한 그 사람은 분명 좋은 향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어떻게 담아야 할 지를 처음부터 알지 못했고, 어색했을 뿐
그러니 찍지 말고 담아보자
담아낸 순간 모두가 우리에게 결정적 순간이 될 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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