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열두시 Nov 02. 2015

언제부터 였을까 '골목길'#2

골목길, 그 속에 담긴 두 번째 이야기들

*부족한 글을 멋진 상으로 채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골목길, 좋아하는 모든 것들의 출발점


벌써 꺼내기 아쉽다며, '언제부터 였을까' 매거진에 세 번째로 쓴 글은 '골목길'이었다. 매거진을 통해 지금까지 창문, 의자, 빛, 아지트, 커피, 흑백, 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중 열차를 제외하면 모두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로, 내게는 그 곳이 혼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놀이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2015년 겨울, 대구 종로의 어느 골목길



길이라는 것은 본래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라봤을 때 가로막고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달리거나 걷는 행동에 집중해 원하는 목적지에 쉽고, 빠르게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골목길은 다르다. '걷는다'는 표현보다 '헤맨다' 또는 '찾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지고 앞만 향하던 시선은 자유롭게 양쪽으로 나눠지기 시작한다.


위의 사진은 지난 겨울 2박 3일 일정으로 찾아간 대구에서 찍은 것으로, 혼자가 아닐 때면 한 번씩 출사를 함께 가는 친구에게 '대구 종로의 어느 골목길'이라며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오래전 '골목길'사진이라며 내가 자랑하듯 보냈던 사진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 사진의 시선은 정확히 길의 방향과 일치했다. 사진의 가운데 내가 서 있었던 길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대구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별 볼일 없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는 건물의 옆모습이 더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저 다른 또 하나의 길이 아닌, 좋아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골목길을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대구, 김광석 거리의 어느 골목길



건물 외벽과 철문의 색, 그리고 이 둘을 절묘하게 섞어 만든 포스터
'걷는 것'에 집중했다면 나의 시선은 이 곳에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골목길을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그(그녀)의 선물






골목길, 엉뚱하고 자유로운 상상이 시작되는 곳


2014년 가을, 낙산공원 근처의 어느 골목길





올 가을은 온 듯, 오지 않은 듯 애매하게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만 작년 가을은 제법 깊었다. 깊어진 가을을 느껴 보고자 월차를 내고 혜화역에서부터 낙산공원까지를 천천히 걸었다. 조금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낙산공원 놀이마당(정상)에 다다랐고 근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볕에 놓인 대걸레 한 쌍을 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자세로 서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게 그들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그들 위로 놓인 네모난 공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궁금해졌고, 오는 길에 만났던 노란 새 한 마리가 떠올랐다.



(좌)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골목길에서 만난 노란새/(우)낙산공원 마을버스 정류장 아래에서 만난 대걸레 한 쌍




서둘러 가야 된다는 듯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었던 노란 새. 비스듬히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대걸레 한 쌍. 공간 입구의 크기를 보아하니 어쩌면 이 곳은 노란 새의 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노란 새가 돌아오기 전 그 곳을 깨끗하게 정리한 대걸레 한 쌍이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퇴근 길, 출근 길,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등은 모두 '가는 것'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골목길에서 우리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자유로운 여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기에 과정 과정을 느낄 수 있고 끄집어 내어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가을, 서울시립역사박물관 뒷쪽의 골목길




손잡이도 없고, 밀고 당기라는 친절한 안내도 없는. 게다가 누군가 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채려는 듯 문 앞에 낙엽을 잔뜩 깔아 둔 이 곳. 그럼에도 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묘한 끌림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부터 였을까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