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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 알고 싶을 뿐이야

2017년 4월, 서울에서 쓰다

by 자그니


갑자기 생각나, 임지훈의 노래를 꺼내 들었다. 낯익고 따뜻한 목소리가 방안에 맴돌기 시작한다. 참 이상하지. 임지훈은 항상 웃는 얼굴의 사람. 웃는 얼굴로 쓸쓸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뭐라고 할까, 이유 없는 허전함이 가슴에 사무치던 날, 기차를 타고 찾아갔던, 이른 새벽의 바다를 보고 있는 기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볼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 내 마음도 모르고 즐거운 듯 재잘거리는 연인과, 아직 떠오르지도 않은 햇살. 조금 비릿하고 따뜻한 바다 냄새. 억지로 꾸며 놓은 듯한 정거장과 레스토랑들. 밝은 회색 빛 콘크리트 길을 따라가다가, 내려가 보면, 밟을 때마다 성클 성클 자국이 생기는 모래밭.

잠이 덜 깬 얼굴에는 아직 눈곱이 붙어있고, 기차 의자에 기대 자느라 다 헝클어진 머리. 구겨진 얇은 잠바와 주머니 속의 동전 몇 개. 그리고 귓가에 꼽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노래들. 텅 빈 머릿속. 뭣하러 왔을까 후회되는 마음과 그런 마음속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햇살.


그래, 그 햇살. 햇살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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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형광등이 켜진 천장이 보인다. 창 밖엔 여전히, 나지막이 꽃이 지는데. 내 마음엔 포기하지도 못할 열병이 되살아나는 밤. 차마 울고불고하지는 못하고, 그저 가만히 토닥이는 게 전부인 작은 아픔이. 이젠 포기하고 집어치우고 살아가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내게도 이름이 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끝도 없는 삶에 진절머리 나서,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싶다가도, 이 삶에 붙어있게 만드는, 누군가의 이름이. 내일이면 다시 당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일이면 다시 당신과 얘기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일이면, 모레면, 아니 언젠가는 꼭-

막연한 그리움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토할듯 힘들어도 누군가 부여잡고 얘기하지 못했다. 웃어야지-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찰싹 때려가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날에는 당신이 보고 싶다. 정말 많이 보고 싶다. 그런 날이 지나가면, 궁금해진다. 나만큼 당신도, 내가 그리운지.




볼 수 있다 믿으며 살았지만 한참을 보지 못했다. 괜찮다. 어딘가에서 잘 살아있으면 된다. 그래도 가끔, 어딘가에 있을 네가, 조금은, 외로웠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한다. 네가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처럼, 나도 가끔, 그런 너에게 위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가끔, 내 생각, 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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