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에서만 파는 책이 나왔다. 이름은 '쏜살 문고 동네 서점 에디션', 민음사에서 찍었고, 김승옥의 단편이 실린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번역본 2종이 먼저 발매됐다. 말 그대로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전국 동네 서점 130여 곳에서만 보고 살 수 있는 책이다.
호기심이 생겨 관련 기사를 읽었다. 책 표지 디자인을 딱 보는 순간, 살짝 얼굴이 찡그려졌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은 아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굳이 캐캐 묵은(?) 고전을 다시 찍어내면서, 꼭 이런 디자인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디자인이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게 만들 힘은 약하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전에 여행할 때 봤던 일본 '문고본' 책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당시 아오이 유우-가 표지를 찍은 문고본이 있었는데, 표지가 예뻐서 이게 무슨 책이지? 하고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쓰는 김에 찾아보니 2007년부터, 일본에선 '재킷 구입(재킷 사진만 보고 사는 행위)'이라 불리는 것이 있었나 보다.
그때 당시 슈에이샤(집영사) 문고에선 '인간 실격' 문고본을 내면서, 재킷을 '데스 노트'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로 바꿨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10만 부를 팔았다. 아오이 유우가 표지로 나선 문고본도 3종이 출시됐다. 기간 한정 5만 부만 팔았는데, 그 책들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후 이런 판매 방식에 맛(?) 들린 탓일까? 유명 사진가를 기용해서 찍은 사진이나 배우, 유명 아이돌을 표지로 삼은 기간 한정... 책들은 계속 나오게 된다. '분카사 문고', '카도카와 문고'도 이 대열에 당연히(?) 합류했다. 물론 판매량도 그때마다 늘었다. 1997년과 비교해 2008년 판매액이 50% 정도 많아졌다고 한다.
읽기 쉽게 글자를 키우고 행간도 늘렸다지만, 역시 1등 공신은 재킷 사진이다.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고전 문고본 판매가 갑자기 늘어날 이유는 별로 없다. 어쩌면 '굿즈'처럼 소비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일단 서점을 찾아온 사람이 책을 보게 만들고, 사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서점을 찾아오게까지 만들었다면 더 좋은 일이고.
연예인을 기용해서 책 표지를 찍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동네 에디션이라고 나왔는데, 그래도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 그냥 동네 서점 에디션이라고 툭-하고 던진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그렇다. 이번에 나온 동네 서점 에디션은 뭔가 화제가 될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원래 이런 '특별한' 상품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웬만하면 이 책을 사겠다는 핑계를 대고 동네 서점을 조사하고, 찾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안 갔다. 이번 동네서점 에디션은, 아쉽지만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이해는 한다. 별로 팔릴 가능성이 안보였을 지도 모르니까.
... 그런데 그거, 해봐야 아는 것 아닌가? 기왕 하려면, 좀 마음 단단히 먹고 제대로 밀어붙일 배짱은 없을까? 파는 쪽의 진심이 좀 느껴져야 사는 사람들도 한번 달려가 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많이 아쉽다. 제대로 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이렇게 뒤늦게라도 끄적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