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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Oct 02. 2016

축구장이 꼭 사각형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좋은 디자인은 삶을 품는다

재미있는 축구장이 생겼다. L자형 축구장이다. 우리가 축구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깼다. L자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마름모꼴도 있고, 지그재그 형태도 있다.

이쯤 되면 이게 무슨 프로젝트인가 궁금해진다. 이 땅들은 대체 어디고, 왜 축구장을 만드는 걸까? 전세계 공터를 축구장으로 만들고 싶은 축구 외계인이라도 침입한 걸까?



당연히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아는 한, 아직 외계인의 침공은 없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Unusual Football Field',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놀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 곳은 끄렁 떠이. 방콕 시내에 있는 빈민가다. 가끔 진짜 서민들의 삶을 느끼고 싶다며 관광객들이 찾아가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코를 막고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빈민가 대부분이 그렇듯 이 곳도 사람들이 사는 작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그나마 찾아낸 공간도 '버려진 땅'들이다. 축구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네모 반듯한 땅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 곳을 만드는데, 꼭 사각형이란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월드컵을 치룰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만들었다. 버려진 땅을 정리하고,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그럴 듯한 경기장이 탄생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은 특이하게, 비영리 단체가 아니다. 건설사인 'AP 타일랜드'와 광고홍보사인 'CJ works'다. 그들이 내세운 목표는 버려진 공간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지만, 사실 다른 부수적인 이익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어쨌든 그들은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축구도 하고, 태국식 하프 발리볼도 즐기고, 아무튼 공간이 생기니 이것저것 다 하고 논다. 이를 통해 지역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를 바란다지만, 거기까진 미치지 않아도 좋다.



놀 곳이 없어 헤매던 아이들이, 놀 곳을 찾았다. 정확한 공간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이 모이면 관계가 생기고, 어쨌든 이 지역 공동체의 무엇인가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럼 됐다. 남은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사실 남은 것이 더 힘들긴 하다. 관계란 것이 늘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 시기와 다툼이 늘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버려진 땅이었던 만큼 사람들이 찾아오기 외진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뭐든 꽃을 가꾸듯 마음을 써줘야 싱싱하게 살아남는다.


그래도 일단, 발은 디뎠다. 발을 디뎠으니 지켜볼 일이다. 공간이 정말 사람의 삶을 바꾸는 지를. 좋은 디자인이, 사람들의 삶을 품을 수 있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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