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그니 Oct 05. 2016

다육 식물로 만든 개새의 정원

가장 쉽게 생각한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은 흔하다

가끔 가장 쉬울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아니,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대부분 오히려 어려웠다. 많이 해봤기에 익숙해서 쉽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다른 문제겠지만... 

세 번째 꽃을 배우는 날, 최원창 선생님이 '오늘은 가볍게 만들어 보자'며 내미신 다육 식물 정원, 흔히 다육이 정원이 꼭 그랬다. 꽃이 아니기에 쉬울 줄 알았다. 그냥 쓱쓱 꽂으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익숙하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파를 막아준다'라는 핑계로 컴퓨터 옆에 다육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육이를 옮겨 심기 위해 화분에서 뽑는 순간, 깨달았다. 내 인생에 쉬운 일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그동안 제대로 키워낸 다육 식물이 한 개도 없었다는 것을. 꽃과는 다르게 다육 식물은 계속해서 키워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오 마이 갓. 그럼 그렇지, 인생이 그리 쉬웠다면, 이렇게 하루하루가 스펙터클하게 느껴질 리가 없잖아.... 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아트는 오늘도 평안합니다.



다육 식물 미니 정원을 위해 준비할 것은 단순했다. 하나는 정원을 만들 그릇. 이번엔 큰 유리컵 같은 컵을 이용했다. 금붕어 한 마리를 키워도 좋을 것 같은 크기의 컵을. 옮겨 심을 다육 식물은 화분 3개 정도면 충분한 듯하고, 다육 식물을 심을 여러 가지 흙을 같이 준비한다. 그걸로 끝이다. 

만드는 것도 간단하다. 컵에 흙을 담고 다육 식물을 옮겨 심으면 된다. 끝이다. 정말이다. 이게 전부다. 훗훗훗. 하아. 하지만 나는 다육 식물을 심으려고 하자마자, 소리부터 질러야 했다.  


으악! 이거 잎이 떨어졌어요!

다육 식물 미니 정원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것들


금붕어를 키워도 될 것 같은 크기의 컵


다양한 다육 식물과 모래들.


돌은 심은 다육 식물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용도로 사용된다


화산 모래... 등은 뭔가 대단한 기능을 할 줄 알았는데, 장식용이었다... OTL


진짜였다. 나는 그냥 손만 댔을 뿐인데, 다육이 잎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가 다육이의 팔 다리를 뽑아버린 느낌이 들어 경악했다. 처음부터 이게 뭐람. 아아, 그냥 꽃이나 만들고 싶다고 할걸. 내가 죄 없는 생명을 빼앗았어! ㅜ_ㅜ... 등등의 온갖 망상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씩- 웃는다.

그거, 안 죽었어요


....에?


다육 식물의 떨어진 꽃잎들



알고 보니, 이 잎들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다고 한다. 그냥 떨어진 잎을 흙에다 묻어주면, 잎 끝에서 뿌리가 나면서 다시 성장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도 못 느꼈던 자연의 신비를 다시 한번 느꼈다. 아아, 이들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종... 맞잖아. 식물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

흠흠, 아무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떨어진 다육 식물 잎을 ... 버렸다. 하아. 새로 만들 정원에 잎을 심을 수는 없으니까.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필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지금은 나를 용서해 달라는 마음으로 버렸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놀란 거냐... 하여간 인간이란. 

흠흠, 아무튼, 다육 식물 정원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섬세한 손길이 요구된다. 처음은 쉽다. 마사를 한줌 정도 적당히 깔고, 배양토를 다육 식물 뿌리가 묻힐 정도의 두께로, 그러면서도 다육 식물을 심었을 때 유리컵을 넘어가진 않을 정도로, 내가 만들었을 때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두께로 덮어줬다. 


시작은 흙을 까는 것부터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다육 식물을 옮겨 심어주면 된다



그다음도 어렵지는 않다. 적당한 위치에 적당한 다육 식물을 적당히 옮겨 심어주면 된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3 화분 정도의 다육이를 옮겨 심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적당히 옮겨 심어 주기도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데, 컵 안의 공간의 좁다 보니 잘못 손을 놀리면 다육이 잎이 자꾸만 떨어졌다. 

조심조심, 다육이를 옮겨 심은 다음엔 뿌리를 잘 다져주고(?), 장식용 모래를 뿌린 다음 장식용 돌로 다육 식물을 적당히 받쳐주면 된다. 그리고 붓으로 다육 식물에 묻은 흙 등을 털어주고 스푼으로 전체적인 모습을 다듬는다. .... 하아. 정말 내가, 태어나 이렇게 섬세한 작업을 할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다.

손대면 톡-하고 떨어지는 다육이 잎들 덕분에, 받은 스트레스가 정말.... ㅜ_ㅜ. 이건 정말 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슨 공예를 하는 것만 같았다는... 다육 식물 정원 만들고 있는데 누가 다가와 사랑한다고 로맨틱 +에로틱하게 백허그를 한다면, 고맙기는커녕 성질부터 버럭- 냈을 것만 같다. 다육이 죽일 일 있냐고...

예, 저는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정~~~말 먼 인간입니다. ㅜ_ㅜ


▲ 잎 떨어질라 초집중-중



그리고 힘겹게 드디어, 완성.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춘 다음, 귀여운 장식품을 하나 꽂아주면 느낌이 살게 된다. 나는 처음부터 꿍꿍이가 하나 더 있었기에, 장식품을 꽂을 공간을 넓게 만들어 뒀지만.


위 사진 왼쪽이 내가 만든 다육 식물 정원이다. 앞부분에 뭔가를 넣을 듯한 넓은 공터가 보인다. 오른쪽은 최원창 선생님이 만드신 다육 식물 정원. 꼼꼼하게 조화가 잘 맞춰져 있다.


앞부분에 넓은 공터(?)를 남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실은 오늘 강습을 들으면서, 처음에 다육이를 이용한 정원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엔 단 하나의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건담' ... 옙. 저는 건담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래서 세팅 된 것이 앞의 공터. 나는 다육이를 이용해 건담이 전시될 공간을 세팅하고 싶었다. 그 결과는...


꽃보다 건담


건.담.이.너.무.커!


아름답게 자리를 차지할 줄 알았던 것이 실수였다. 건프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유리컵을 뚫고 나와서, 도저히 건담용 전시 공간으로 다육 식물 정원을 이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른 것을 세팅해 봤다.


남들보다 세배는 빠른 그 분도 세팅을 해 봤다. 잘 어울리는데,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저런 것들을 세팅해 봤지만, 어울리는 것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개새를 세팅한 것은 마지막. 원래 선물로 주려고 가지고 있던 애들이라 포장도 뜯지 않았는데, 다육 식물 정원을 위해 과감하게 뜯어내고 세팅을 해 봤다. 그 결과는...



성공!


애당초 개와 새를 모티브로 해서 나온 피규어라서 그런지, 다육 식물 정원에 완벽히 걸맞은 짝이 됐다. 실은 처음부터 개새를 위한 정원을 만들었던 겁니다. 우하하하! 해도 좋을 정도로-





지금 개새, 아니 다육 식물 정원은, 개새와 함께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내 책상이 의외로 햇빛이 잘 든다(여름엔 죽는 줄 알았다). 거기에 혹시라도, 전자파를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섞였다. 책상 위에 올린 다육 식물 정원은 관리하기도 편하다. 물은 1~2주에 한 번씩, 땅을 봐서 말랐다-싶을 때만 주면 된다. 뭔가 말라서 떨어지는 것도 없다. 게다가 개새의 집으로, 뭔가 완벽하다. 

건담 집은 못 얻었지만 개새의 집은 얻었다. 당분간 다육이들과 개새는, 이대로 행복하게 내 책상 위에서 살아갈 것만 같다. 가끔 이번에도 죽이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있긴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다육 식물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선생님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다육 식물, 의외로 잘 자란다. 꿋꿋하게. 햇빛 잘 드는 곳에 두면 좋고, 밤에는 산소를 내 뿜기에 침실에 놓아두면 좋다. 볕이 잘 안드는 침실에 머문다면, 부지런해야 한다. 물은 자주 안주는 것이 좋다. 땅이 마를 때마다 한번 씩만. 그리고 나는 다음 번엔, 건담이 들어갈 만한 대형 다육 식물 정원을 만드는 꿈을 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마고치가 돌아왔다, 20년 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