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대방 고라니 Feb 23. 2022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적당히 살고 싶은 인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 번씩 오래 달리는 취미가 있었다. 달리는 주기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내킬 때 달렸다. 때때로 이유 없이 답답했던 중학생 시절엔 아이리버 MP3를 들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자주 찾았다. 그렇게 운동장을 천천히, 오랫동안 뛰곤 했다. 두 애즈 인피니티, 자우림, 린킨파크 등의 노래를 들으며 어두컴컴한 운동장을 1시간 정도 돌고 나면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멍하고 깨끗한 그 느낌이 좋았다.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도착할 때쯤엔 땀이 식어 몸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젖은 옷을 벗고 욕실로 직행해 머리 위로 온수를 틀고선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그런 달리기를 좋아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목적이 다르면 느낌과 양상이 다르다. 나 역시 모든 달리기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중 제일 좋아하지 않는 달리기는 학교에서 체력측정 때 하는 오래 달리기였다. 그건 유독 싫었다. 힘들었고, 잘하지 못했고, 공개적으로 못하는 게 싫었다. 어릴 적부터 오래 달리기를 하면 나는 늘 중하위권 무리에 껴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못하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측정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게 됐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달리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달리기 전에 나는 늘 긴장했다. 힘이 없는데 억지로 힘을 낼 때 느끼는 감각을 곧 겪을 거란 생각과 또 뒤처지겠지라는 생각에서다. 그래도 속으론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뛰었었다.



종점을 통과해도 후련하지 않았다. 괴로운 시간이 드디어 지나갔다는 마음이었다. 그건 열등감 때문일까 싶었다. 체력 측정은 개인 평가였지만 같은 트랙 위에서 뛰기 때문에 자연스레 속도가 비교됐다. 경쟁인 것 같은 달리기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통스럽게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했다. 이런 달리기가 매년 반복되자 나중엔 그다지 의욕도 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이길 마음 없이 뛰는 자신과 앞서 나가는 친구들은 보노라면 괜히 힘들고 무력감만 느껴졌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던 달리기는 없었다.



나는 적당히 달리고 싶었다. 머리를 비우고 의식하지 않아도 한발 한발 내디뎌지는 그런 달리기가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적당히 가쁜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내달리는 행위는 내게 일종의 명상과도 같았다. 몸의 노폐물과 함께 생각과 마음의 찌꺼기를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적당히 균형 잡힌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삶에서도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뭐든 적당히 열심히 하고 적당히 즐기는 적당한 인간이란 의미다.  



너는 딱 적당히 뛸 놈이야. 죽기 살기로 뛸 놈이 아니란 말이지

군 생활 체력 측정 도중 어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들켰다고 생각했다. 그 선배의 말처럼 나는 군 생활도 적당히 성실하게 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과하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아니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서다. 노력하지 않고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넓은 집에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이면 충분하다. 경쟁하듯 더 좋은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내 의지도 아니면서 과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 내 모토다. 가끔 나를 걱정하거나 못마땅하게 보는 눈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생각을 얘기해도 납득시킬 순 없을 것 같아 상대방의 말을 새겨듣는 모습을 보인다.



아, 그런데 요즘 자꾸 트랙이 겹치는 느낌이다. 나만의 트랙에서 적당히 달리고 싶은데 나이, 연봉 등이 자꾸 나보고 빨리 달리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아니 사실 내가 불안해서 빨리 달리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이미 1억, 2억을 저축해 사회적으로 저만치 앞선 친구들을 보고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전역 동기들이 취업 스터디 모임을 할 때 나는 고전독서토론모임을 나갔고, 자격증을 공부할 때 생뚱맞게 전공과 무관한 기자 교육을 받았다. 빨리 달리는 이들과 달리 나는 가고 싶은 방향으로 적당히 뛰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씩 그런 자리가 있다. 명절이나 결혼식과 같은 자리. 그럴 때면 체력 측정처럼 동일한 트랙에 올려진 기분이다. 너는 어디까지 갔니? 생애주기를 어디까지 이뤘니? 알게 모르게 뒤처진 기분, 생각 없이 적당히 달리고 싶은 요즘이다.

이전 02화 중소기업 직장인이 보는 하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