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그 사이
어릴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사막의 밤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창 책을 읽어 재끼던 시기에 스친 어린 왕자 때문인지, 은하수가 보이는 시골 밤하늘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책에서 사막의 밤하늘이 제일 아름다웠다는 문장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열망과 호기심이 섞인 단순한 생각은 상상력이 더해져 슬며시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어느 순간 그 생각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언젠간 그 하늘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뜬구름 잡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직도 밤하늘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면서 그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내 평소 머릿속만 들여다본다면 이상주의자나 몽상가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러나 밖에서 나는 조금 현실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적당히 철든 것처럼 보여서 사회생활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애주기에 맞춰 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 내 나이쯤이면... 재테크를 통해 집 살 준비와 함께 결혼 준비를 하면 된다. 누군가 고민이 있냐고 물으면 뜬구름 같은 생각은 넣어두고 이렇게 답할 것이다. “슬슬 결혼 생각해야 해서 집 장만하려고 준비하는데 쉽지 않네요” 여러모로 정말 쉽지 않다.
마냥 현실적으로 혹은 이상적으로 치우쳐 살진 않았다. 이공계를 나온 나는 직업군인을 하다 전역하고 연고지에서 벗어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기자를 하려고 내린 그 선택은 살짝 현실 감각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그리고선 또 남들에게 집이 고민이라고 말하면서 사는 중이다. 요즘은 어중간한 이상주의자가 된 내 모습을 본다. 물론 남들이 볼 때도 어중간한 모습일 것이다. 적당히 살아서 적당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정도. 적당한 아니 중소기업 사원이 받기 적당한 월급을 보면 같이 공부한 친구나 군대 동기들이 생각난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 다니는 그 친구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떡값이 나오는 달엔 차 한 대 값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진짜 떡만 주는데 말이다.
작으면서도 쉽게 커지지 않는 월급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전공을 살렸더라면, 전역 동기들과 같이 취업 준비를 했더라면, 좀더 현실적으로 굴었으면 어땠을까라고 말이다. 아마 한달살이는 면했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한 두 단계 더 높은 스텝을 밟고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두고 돈을 더 받는 일을 할까. 그러기엔 너무 늦었으려나.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현실과 이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중간하게 산 나는 마치 애매한 재능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덩그러니 놓인 예체능인이 된 기분이다. 아, 나 같은 경우는 행복이겠지. 나는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간을 보며 행복을 찾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 사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많았고, 이상만 사막의 밤하늘처럼 높이 잘 보였다. 그러나 그 곳을 가기 위해 길 위에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깨달았다. 생각보다 멀구나. 좀 더 걷다 보니 가늠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인간이구나. 그때부터 뜬구름 잡는 인간은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가야할까. 어디까지 가는 것이 적당히 행복한 걸까. 안정적인 현실과 막연한 이상을 어느 비율로 섞어야 가장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달하는 곳은 이상과 현실 그 중간 어딘가다. 다들 그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행복해하며 살아간다.
지금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사막의 밤하늘을 보기 위해 훌쩍 떠날 정도의 재력과 여유는 내게 없다. 내가 보는 하늘은, 볼 수 있는 하늘은 서초구 어딘가에 있는 7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보는 하늘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4층 사무실에서 나와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간다. 주위로 고층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낮은 원룸촌이 보인다. 사람들이 슬슬 퇴근할 즈음 그곳에서는 노을을 볼 수 있다. 씁쓸한 기분으로 보는 하늘은 아름답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볼 때마다 하늘이 퍽 아름답다. 아름다운 노을 빛이 씁쓸한 맛을 배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