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바라기들
올해 초, 도다리 살이 한창 단단해졌을 즈음 사수 과장님과 횟집에 갔다. 그날은 과장님이 한 턱 내기로 한 날이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퇴사? 턱이었다. 최근 1년 동안 과장님은 퇴사 예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물론 나한테만). 과장님과 밥 먹을 때마다 등장하는 장기적 퇴사 계획은 한 달 두 달이 지날수록 조금씩 살이 붙었고, 1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그때가 가까운 듯 보였다. 아마 과장님도 그걸 느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으리라. 직접 묻지는 않았고 그저 짐작만 했다.
평소 과장님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끼니를 해결했다. 가끔 나와 둘이 식당에 갈 때도 있는데, 과장님은 그때마다 꼬박꼬박 음식 사진을 찍었다. 필터 없이 음식 바로 위에 폰을 대고 대충 찰칵하고 찍었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그때마다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과장님은 지출 보고용이라고 뭔가 해명 같은 답을 어느 날엔가 했었다. 아, 참고로 보고 대상자는 과장님 와이프다. 그래서 나는 과장님이 회를 먹자고 마련한 이 자리가 꽤나 신경 쓴 자리임을 알고 있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자리겠지 생각했다.
과장님과 밥은 꽤 자주 먹었지만 술은 처음이었다. 과장님은 도다리, 세꼬시와 더불어 기본 횟감이라 할 수 있는 광어와 우럭 그리고 모듬 해산물까지 시켰다. 음식은 맛있었다. 무엇보다 한 단어인 양 자연스러운 봄도다리가 특히 달았다. 횟집 들어올 때 양식인지 아닌지 수족관에서 확인도 안 했지만 그저 살이 달았다. 오랜만에 먹는 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느 술자리가 그러하듯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온갖 얘기가 다 나왔다. 과장 자신이 사실 외고 전교회장까지 했었다는 얘기, 친구들은 다 스카이에 士자라는 얘기, 수능에 미끄러져 00대에 갔지만 노는 게 재밌어서 반수를 못 했다는 얘기, 그걸 지금 너무 후회한다는 얘기 등을 매운탕에 넣은 라면사리 면발이 불 때까지 늘어놓았다. 술과 도다리는 달았고 과장님의 얘기는 꽤나 씁쓸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는 늘 퇴사와 이직을 꿈꾸는 듀오였다. 서로의 계획을 수시로 상대에게서 확인하곤 했다.
“00 씨, 제발 저보다 늦게 퇴사하십쇼. 저 퇴사할 때 누군가는 배웅을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하, 알겠습니다, 과장님. 대신 빨리 퇴사하십시오”
우린 서로를 걱정하는 나름 막역한 사이였다. 다음 회사로 출판계를 희망한다는 나에게 문창과를 나온 과장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쪽도 그렇게 깨끗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여기보다 자괴감은 덜 느낄 겁니다.”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과장님 와이프도 문창과인데 출판계를 갈 거라는 내 소식을 듣고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솔직히 글을 잘 쓰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래서 나름 글밥 먹고 산다는 매거진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와 시간이 지나니 내가 실은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건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흐려지는 듯했다. 예전에는 선명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에서는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런 기분이다. 입사할 때는 열심히 취재하고 업계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그런 기자를 상상했던 것 같다. 물론 글도 잘 쓰고. 음, 사실 그게 정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 문창과를 나왔다는 과장님과, 국장님을 보니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국장님도 문창과 출신이다.) 잠시 설명하자면 국장님은 아찔한, 치명적인 등의 표현을 기사에 넣으면 좋아하는 분이며, 나중에 평범한 카페나 베스킨라빈스(연유는 모르지만 명확하게 베스킨라빈스다)를 차리는 게 꿈인 분이다. 학생 시절, 교수님이 당시 등단을 제안했지만 교수님 백을 쓰는 것 같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후회한다고 덧붙였다. 저 말을 들을 땐 우리 회사가 후회가 가득한 건지, 원래 모든 회사에는 후회만 있는 건지, 잠시 생각했다. 생각의 끝에는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도 나중엔 아찔한, 치명적인 등의 표현을 좋아하는, 아니 좋아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00 씨, 다 드셨습니까? 슬슬 막잔 합시다." 생각에 살이 붙어 더욱 뭉게 피어날 즈음 과장님이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기색을 비쳤다. 테이블 위엔 세꼬시 조금 하고 졸아들어 있는 매운탕이 남아있었다. 계속 끓어 발생하는 기포에, 자꾸 뒤적이는 국자 탓에 뼈에 붙은 생선 살은 국물에 잘게 풀어진 지 오래였다. "과장님, 막잔 하시죠." 탁해진 국물을 뜨며 마지막 술잔을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