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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Aug 19. 2022

위잉위잉 추적추적

직장인 쉬는시간

비가 많이 왔다. 우산은 챙겨서 출근했다. 비는 아침 출근길엔 추적추적 오더니, 점심 이후부터는 창밖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다. 다행히 나는 비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늘은 좀 아쉬웠다. 그건 쉬는 시간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가 음악을 못 듣는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가끔 머리가 지끈할 때 옥상에 가서 볼륨을 한껏 올려 노래를 듣는다. 그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노래 한 곡을 온전히 듣고 나면 머리 아픈 게 좀 가신다. 그러고선 천천히 내려간다. 그러면 7~8분 정도 지나있다. 1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내 모니터는 아직 켜져 있다. 그러니까, 두 곡은 안 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일하고 나면 머리 아픈 타이밍이 온다. 비는 여전히 많이 왔지만 그냥 옥상에 올라갔다. 문 앞에서라도 음악을 들으러 말이다. 다행히 문 근처에 차양이 있었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다. 에어팟을 꽂고 그 아래서 노래를 틀었다. 주위를 보니 평소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회색 빛이 만연했고, 건너편 빨간 벽돌의 높은 빌딩 정도만 선명했다. 옥상 바닥은 물로 살짝 덮인 상태였다. 땅에 튀는 것이 아닌 물에 튀기는 물방울들을 보고 있으니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픽은 혁오 밴드의 위잉위잉이다.




평소 별생각 없이 노래를 듣지만, 비가 와서인지 잡생각이 떠올랐다.

병신 같다

이건 내가 회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회사 상대로)이다.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요 몇 달간 아니 근 2년간 확실히 그랬다. 입사한 지 얼추 2년 8개월이니까 8개월 차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가장 최근엔 협력 업체 대표라고 하는 인간이 초등학생이 만들법한(과장이 아니다) PPT를 칼럼 자료라고 보내와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상한 강남 클럽 파티 초청장도 함께 보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받고 의문을 가진다. 분명 병신 같고 돈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왜 협력이란 걸 하는 걸까. 이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이템을 상식적이고 있어 보이는 기사로 포장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서 의문을 안 가질 순 없었다. 상식적인 의문과 우리 회사니까 그렇지라는 강제적인 납득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병신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노래가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두 곡은 없었기에 남은 노래에 집중했다. 참고로 나는 위잉위잉을 즐겨 듣는다. 내가 밴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내게 귀르가즘을 선사하는(막귀이지만) 노래여서다. 특히 중반부터 왼쪽(이어폰)으로 일렉기타 소리가 치우치며 박자를 잘개 쪼개는 연주가 그런  듣는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중후반을 넘어서면 오른쪽에서도 핑거스타일 일렉기타 연주가 나오는데, 그게 하모니를 이뤄 후반부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부터는 생각을 접은 채 집중할 수 있었다. 물 바닥에 튀기는 물방울과 거센 비와 천둥 번개 치는 하늘을 보면서 마지막 부분까지 남김없이 즐겼다. 그런 다음 모니터가 꺼지기 전에 얼른 계단을 내려갔다. 병신 같다고 생각하는 회사에 눈치 보며 뛰어 내려가는 내 모습이 조금 웃겼다. 나도 병신인가 하고 생각했다. 오늘도 의미 없는 또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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