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은 기묘하다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00아 잘 지냈어? 얼굴 보자고 한 게 벌써 반년이 지났네. 곧바로 다음 카톡이 왔다. 혹시 셋째 고모님 소식 들었니? 피시 모니터에 카카오톡 창을 띄웠다. 둘째 사촌 형이었다. 업무 중이라 나중에 봐야지 생각하다가 왠지 빨리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 셋째 고모네 사촌들은 다 결혼했고, 셋째 고모는 위암이신데...까지 생각하고 답을 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아, 소식 못들었구나, 셋째 고모님 병환으로 돌아가셨거든. 장례식장이 화성인데 같이 갈까 싶어서 연락했어. 아, 역시 쎄한 예감은 타율이 좋다.
퇴근 후 집에 들러 검정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6년 전쯤 샀던 양복은 어느새 작아져 있었다. 17년도 할머니 장례 이후 처음 꺼내 입은 건가 생각하다가 채비를 서둘렀다. 검정 넥타이와 현금 준비 때문에 다소 바삐 움직였다. 사촌 형과는 사당 역에서 만났다. 다음 날 출근해야 했기에 사촌 형 차를 얻어 타기로 한 것이다. 가면서 이것저것 근황을 나누었다. 둘째가 벌써 4살이라느니, 사실 얼마 전 셋째를 가지게 되었다느니 하는 얘기였다. 적당히 사는 얘기를 하면서 장례식에 도착했다. 장례식장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건물로, 2층 7호실로 향했다.
셋째 고모는 유독 할머니를 닮으셨다. 특히 외모가 판박이었다. 작은 키에 통통한 허리, 그리 길지 않은 팔다리,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졌다. 사실 할머니의 귀여운 체형은 친가 어른들 전부에게 대물림 되었다. 그래서 친가 어른들이 만든 밴드 이름이 단지회다. 생각하는 그 단지가 맞다. 옆으로 불룩 튀어나온 모양의 단지. 친가 어른들은 돌연변이 하나 없이 모두 작은 키에 아기자기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이미 단지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셋째 고모 얼굴을 뵈러 빈소로 들어갔다. 고모의 서글서글하고 밝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히 가세요.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기묘하다고 매번 생각한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공존하지만 그 공존이 자연스러워 보여서다. 이를테면 웃음과 울음 같은 것들이다. 적당히 어수선한 장례식장 한쪽에서는 걔(셋째 고모)가 이랬었는데 저랬었는데, 참 요즘 어디에서 지내, 추억을 얘기하면서 웃고, 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큰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사촌 되는 분 등 먼 친척들에게 인사드리면서 밥을 먹었다. 웃음과 울음, 반가움과 어색함, 죽음에 대한 슬픔과 삶에 대한 소중함. 한껏 농축된 감정과 삶의 이야기 속에는 그런 것들이 녹아있다. 그 광경을 얼핏 보면 상반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냥 삶이 그런 건가 보다 생각했다.
토요일이 발인이었다. 나와 사촌 형은 아침 일찍 장례식장을 다시 찾았다.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화장터로 갈 준비를 했다. 나는 운구를 맡았다. 흰 장갑을 끼고, 관을 들기 위해 천을 꼬아 만든 줄을 단단히 쥐었다. 하나 둘 셋, 나무로 짜인 관을 네 사람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웠다. 우리는 천천히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 앞에선 장례 지도사가 마지막으로 잠시 시간을 주었다. 셋째 고모네는 울었다. 관이 화장터로 들어갔고 유족들은 대기실에 모였다. 화장이 완료되려면 1시간 30분 남짓이라고 했다.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하다 알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기실에서는 왠지 모르지만 한껏 웃었다. 사실 단지회는 유쾌하기 짝이 없다. 모이니 슬슬 옛날 얘기가 나왔다. 영지(셋째 고모) 걔가 실은 똑똑했어,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면 영수(둘째 큰아버지) 동생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니까. 둘째 큰아버지는 단지회 내에서 상당히 입지적인 인물이다. 학창 시절엔 주먹을 꽤나 썼고, 군대에서 탈영했다가 징계 받는 대신 말뚝을 박아 별까지 단 사내다. 그런 이야기 꽃이 피면서 셋째네 사촌 누나들 역시 농담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화장이 끝났다고 안내 방송이 나왔고, 우리는 다시 화장터로 가서 유골함을 인계 받았다. 셋째 고모는 작은 단지에 담겨져 나왔다. 사촌 누나들은 유골함을 받고 다시 울었다. 조금 있다가 장례 지도사가 유골함을 단단히 닫은 후 공기를 한껏 빼 압축했다. 그리곤 질소 팩을 유골함 구멍에 꽂아 질소를 채웠다. 진공 유골함이라고 했다. 단지회는 끝까지 남아 유골함이 단단히 밀봉되는 것까지 지켜봤다.
밀봉되는 유골함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토록 단단히 밀봉해 진공 처리까지 하면 추억을 고스란히 보관할 수 있을까. 사실 진공 유골함의 진공 상태는 몇개월 남짓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도자기 함에 밀봉만 잘 해도 부패 방지 효과는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공 유골함이 엄청난 상술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떠난 이와의 추억을 더욱 단단히 지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유족들에게 그깟 몇 만원이 어떠하랴. 진공 처리가 금방 끝났기에 하던 생각을 이내 멈추었다. 그저 한 사람이 작은 단지에 담기는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