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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Sep 15. 2022

직장인의 저녁은 예민하다

직장 스트레스

답답했다.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감질나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스트레스 관리용 운동 따위로는 풀리지 않는 심각한 답답함이었다. 이 느낌이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일이 있었다. 원인은 직장 스트레스였다. 건강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직장인을 괴롭히는 문제는 대부분 직장에서 비롯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기자팀이 나 혼자가 된 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내가 다니는 잡지사는 일의 특성상 팀에 사람이 적다. 으레 그렇듯 단체 규모가 작을수록 한 사람이 맡는 일의 경계는 흐려진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랬다. 이 개념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아니 원래 적용되고 있었지만 이번엔 무슨 할인마냥 중복 적용까지 됐다. 사수가 퇴사한 지 두 달이 지났건만, 회사는 어? 이게 돌아가네? 란 태도로 사람을 계속 뽑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에 응대해 퇴사 의사를 밝히는 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10월까지 한다고 기한을 둔 게 실수였던 것 같다. 회사는 최대한 기다렸다가 구인할 생각인 듯, 여전히 기자팀은 나 혼자다. 내가 바로 걸어 다니는 기자팀이다.



그 덕에 나는 최근 한창 예민한 사람이 됐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평소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내 무던함은 온데간데없이 요즘 내 속엔 항상 화가 가득하다. 만약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치고 가거나 그와 비슷한 잘못을 한다면, 그러니까 누군가 트리거 버튼만 살짝 눌러준다면 언제든 펑하고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개인적으로 이 말에 약간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통념이라 따르고 있다). 나는 요즘 내 부정적 감정이 어디에도 반응하지 않도록 최대한 숨죽이고 최소한의 반응만 하고 있다. 그런 상태로 숨죽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퇴근 후 찌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따닥

예민한 귀에 파찰음과 파열음이 뒤섞인 소리가 꽂혔다. 장작불에 마른나무가 타면서 나는 듯한 그 소리에 상당히 놀랐다. 혼자만 있는 자취방에서 소리가 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소리 자체가 상당히 커서였다. 소리가 난 방향에는 스탠드형 모기 퇴치기가 있었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제 값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무언가가(날파리나 모기) 터지는 소리는 상당히 경쾌하고 통쾌하게 들리면서도 귀를 거슬리게 했다. 조금 뒤 다시 따닥 소리가 났고, 나는 벌레가 터지면서 생기는 작은 스파크도 목격할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빛을 남기는 그 장면은 아주 짧고 사소했지만 강렬했다.



퇴치기에서 벌레가 터지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친구였다. 일주일 중 평일 한 날에 데이트 하는 건 우리의 룰이었고, 그날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속에 화가 남아 있어 답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냥 벌레 터지는 걸 보거나, 유튜브를 틀어두고 누워 있고 싶었다. 여자친구는 힘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반면 나는 힘들거나 화나는 일이 있어도 입 밖으로 잘 내지 않았다. 운동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폰게임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그렇게 있고 싶었다. 혹은 벌레처럼 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이 즉흥적인 생각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약속된 만남을 직전에 취소하는 일 말이다. 내 상태와 별개로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약속을 취소하면 그녀는 상당히 서운한 감정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서운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게 아니다. 쌓이지 않도록 얼른 없애거나 애초에 쌓지 말아야 하는 그런 감정이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지 말자. 나는 그녀를 만나러 집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치킨 집에서 만나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톡톡 터지는 기포를 보면서 그녀와 건배를 했다.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 느낌도 있었다. 사실 나는 요 며칠간 그녀에게 조금 냉랭하게 대했다. 잘 웃지 않았고 데이트 중에도 혼자 있고 싶다는 티를 냈다.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며 내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힘들다. 종일 가슴이 답답해서 정신 상담도 예약했다. 회사에서 호구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어느 정도 변명으로 시작한 말에 술이 더해지니 자연스레 말이 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열심히 애를 써가며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 나의 말은 점점 상투적인 토로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 상투적인 토로가 진심으로 느껴졌다. 



내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낯부끄러운 감정을 마주하기 싫고, 온전히 내비치는 것도 싫어 나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런 위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감정을 한껏 드러내 토로하고 함께 욕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받는, 그 일련의 과정 말이다. 효용적이지 않다거나 발전이 없기 때문이라는 그런 삭막한 이유는 전혀 아니다. 그건 내게 너무 적나라했다. 그렇기에 내 감정을 한껏 드러낸 이유 역시 당연히 알지 못했다.



남은 치킨을 보면서 계속 얘기했다. 더 이상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외려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이 들었다. 만약 훗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면 그 결심의 순간이 지금이지 않을까. 반쯤 남은 치킨과 맥주를 보면서, 그녀에겐 힘듦을 얘기하면서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대신 맥주를 들이켰다. 기묘하고 예민했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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