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여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 역시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일단 모이는 습성이 있다. 나와 누나가 사는 서울이든,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든 간에 말이다. 자고로 가족이란 주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부모님(주로 아버지)의 고집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명절 두 번을 포함해 한 해에 여섯 번은 모인다. 이 규칙은 거의 깨지지 않는다. 그건 30년간 가정을 평안히 지킨 아버지에게 내재한 일종의 철칙 같은 걸 수 있다. 혹은 친한 지인이 기러기 아빠에서 끝내 이혼남이 된 것을 곁에서 지켜봐서 일 수도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늘 그렇듯 아버지는 어 왔나 인사말과 함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몸이 성한지만 확인하셨고, 어머니는 우리 아들 왔냐며 나를 안았다. 운전해서 피곤하제 좀 쉬었다가 저녁 먹으러 가자. 나는 알겠노라고 대답한 뒤 바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여기에 눕는 건 6개월 만이었다. 내 방은 그대로였고, 부모님 역시 똑같이 나를 맞았다. 주름 정도만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었다. 살짝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본가에 왔구나 싶었다.
우리가 갈 곳은 고기와 조개를 구워 먹는 무한리필 집이라고 했다. 어머니 픽이었다. 사실 리뷰와 사진을 보니 썩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무한리필 류의 식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다. 식욕이 끊이지 않았던 학생 시절에나 무척 반겼다. 요즘 무언가를 과하게 하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루를 적당히 힘들게 보내며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직장인이 사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겐 무한리필 식당은 살짝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들 생일을 위해서 열심히 식당을 찾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고기 좋지, 어디라고?
대구 외곽에 있는 한 식당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다. 퇴사는 언제인지, 일은 언제 다시 하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9월 말까지만 지금 회사를 다니고, 새로운 일은 12월에 다시 시작할 거라고 답했다. 뜬 시간에는 쉬면서 알바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알바는 대충 둘러댄 거였다. 내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근황을 말했다. 아버지도 일을 9월까지 한다고 했다. 대표가 사고를 쳤는데, 잘잘못이 어찌 됐든 시설장인 아버지는 무조건 교체되는 거라고 했다. 어차피 잘됐다며(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는 고기를 구우면서 말했다. 아버지의 근황 나눔은 나보다 더 솔직했고, 고기는 역시 맛이 별로였다.
저녁을 먹고 서울로 올라가려다 생각을 바꿨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과일을 먹었다. 어머니는 과일을 먹으면서 여자친구는 잘 만나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잘 만나고 있다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내게 여자친구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여자친구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내밀었다. 나는 안 줘도 된다고 말만 했다. 어머니는 알겠다면서 내 가방에 돈 봉투를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제 너거 아빠 온데 다 자랑하고 댕긴다." 아버지는 주변 지인의 자식들 결혼 소식이 내심 부러웠나 보다. 나는 대답않고 그냥 끄덕였다. 음, 나는 당장 결혼할 형편은 안 되는데. 문득 내가 불효자인가 싶었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 종종 이런말을 하곤 했다. 나는 집안에서 자유롭게 산다. 부모님은 나를 옭아매지 않고 터치 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실제로 여지껏 내가 한 선택을 부모님이 반대한 적은 없었다. 큰아버지 빽이 있는 군대에서 장교 생활을 그만둘 때도, 뜬금없이 기자를 하겠다며 서울로 올라갈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제 앞길 잘 가리는 아들인 양 대했다. 부모님은 내가 일하고 있는(이제 그만둔) 잡지사의 잡지도 여즉 구독하고 있다. 나는 내 바이라인이 자랑스럽지 않은데, 부모님 눈에는 다르게 보이나보다. 부모님은 주변 사람에게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다음날 새벽,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집을 일찍 나섰다. 부모님은 자다 일어나 조심히 올라가라고 했다. 조심히 가기 위해 집을 나서자마자 커피 파는 곳을 찾았다. 문을 연 곳은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카페는 일찍 문을 연다는 게 생각났다. 곧장 고속도로를 올려 휴게소에 들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호두과자를 주문했다. 내 카드를 꺼내려다 지갑에서 아버지가 준 신용카드가 눈에 띄었다.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갈 때 빵 사 먹으라고 아버지가 준 카드였다(아버지는 내가 빵에 환장하는 걸 안다). 취직한 지 꽤 되었지만 나는 염치없게도 그 카드를 종종 사용한다.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결제 문자가 가는 것도 안다. 아버지는 그 문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카드를 내밀면서 나는 불효자인 걸 실감한다. 꽤나 씁쓸한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