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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Oct 30. 2022

다행한 화상

얼마 전 고깃집에 갔다가 손을 데었다. 함께 갔던 친구는 괜찮냐고, 많이 안 데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답했다. 물집은 살짝 잡혔다. 조그맣게 잡힌 물집치곤 꽤나 쓰라렸다. 그다지 섬세하지 않은 성격 탓에 나는 1년에 한번 정도 손을 데곤 한다. 그때마다 화상은 참 무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이 꽤 심한 화상 당한 것을 생생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어머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늘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는 부모님이 집에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와 살짝 다른 일상에 미묘함을 느낄 즈음이었다. 전화를 해볼까 하는 타이밍에 아버지가 들어왔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살짝 급한 모습으로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화상을 좀 입었다. 니네들은 집에 있어라.”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아버지는 다시 집을 나섰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만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좀 불안했지만 아버지 말대로 가만히 있어야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당한 화상은 상당히 심했다. 사고난지 며칠 후 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사고 당일 아버지가 우리에게 한 말의 늬앙스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었다. 아마 우리의 걱정을 덜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 의도가 어느 정도는 먹혔던 것 같다. 나는 괜찮겠지 하며 어머니를 보았다. 생각보다 처참했다. 어머니는 얼굴상당 부분을 붕대로 감고 있었고, 붕대 사이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진물과 함께 퉁퉁 부어 있었다. “어 왔나?” 어머니가 힘겹게 입을 열어 우리를 맞이했다. 함께 간 외숙모는 그때 울음을 터뜨렸다고 기억한다. 나는 그때 되어서야 어머니의 구체적인 상태와 사고 정황을 알게 되었다. 낙엽을 모아서 태우던 중 부탄가스 캔이 낙엽 더미 안에 있었고, 그게 어머니 정면에서 터졌다고 했다. 화상 부위는 상당 부분이 2도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란 단어를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받은 충격에 비해 어머니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했다. 2~3일 주기로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열심히 재생 연고를 발랐고, 햇볕을 보지않기 위해 늘 모자와 선글라스를 열심히 쓰고 다녔다. 어머니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흉터는 정말 남지 않았다. 재생된 피부는 외려 이전보다 더욱 깨끗하고 생기넘쳐 보였다. 많은 사람이 어머니께 회복 잘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 말이 참 적합하다고 느꼈다. 




살짝 쓰라린 물집은 그때를 떠오르게 한다. 떠오르는 건 다행인 결과뿐만은 아니다. 그때의 불안함, 사고 모습과 충격, 안타까움까지 모두 떠오른다. 그런 것들이 머리를 한번 휘감고 지나가자 그런 생각이 든다. 참 다행이었지. 오늘은 어머니께 전화 한통 드려야할 것 같다. 평소처럼 왠일이냐고 하시면서 좋아하실 것이 그려진다. 물집이 조금 쓰라리긴 하나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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