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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Nov 17. 2022

서울살이 할 만해?

서울에 올라온 지 3년째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가끔 내게 이렇게 묻곤 한다.

 서울살이 할 만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여러 생각이 든다. 입에 풀칠할 정도라고 해야 하나, 전세 대출 상품을 잘 활용해 원룸을 얻어 적당히 산다고 해야 하나. 살만하다는 것의 기준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 그냥 대답을 뭉뚱그린다. 어 할만해, 너도 잘살지? 상대방은 당연히 삶의 구질구질한 부분을 묻는 게 아니다. 관용적 질문엔 그에 맞게 대답하는 게 매너다. 아임 파인 땡큐 앤유?



근데 사실 정말 살만하다. 나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꽤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기숙사 고등학교, 대학교 자취, 직업군인 등 쭉 밖에서 터를 잡고 생활했다. 그동안 내 생활터는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을 거쳐 현재 서울까지 이르렀다. 어릴 적 잠깐 강원도 화천에 산 것까지 치면 대부분의 지방에서 지내봤다고 말할 수 있다. 지방러의 경험으로 보자면 사실 서울살이는 여타 지방과 별다를 게 없다. 적당한 방을 잡고, 방값을 내면서 살면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살면 잘 산다 소리는 못 들을 수 있다. 어쩌면 팔자 좋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진짜 그냥 살만한 거다.



삶의 질을 따진다면 지방이 더 좋을 수 있다. 같은 값으로 누릴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왜 여기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고 싶은 일 하러 왔어요.” 

맞다. 대부분 젊은이가 그렇듯 나도 꿈을 찾아 기회의 땅으로 왔다. 그러나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꺼내지 않는다. 꿈이라던가 도전을 말하기에는 슬슬 설득력이 떨어질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완화한 대답을 한다. 하고 싶은 일 하러 왔어요. 그러니까 난 꿈을 좇는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겁니다. 교묘히 포장하며 꿈꾸는 생활을 이어간다. 



나는 글밥이 먹고 싶었다. 무작정 글밥을 먹을 순 없기에 적당히 타협 본 게 기자다. 기자로 일할 만한 대부분의 언론사와 잡지사는 서울에 있었고, 기자 교육 역시 서울에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적당히 교육을 받고 한 잡지사에서 일했다. 기자로 일하게 된 첫 직장에서 나는 광고성 기사를 주로 작성했고, 자극적인 타이틀을 고민하며 2년을 보냈다. 발전하기보단 갈리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쯤 국장님께 말했다. 국장님, 이번 달까지만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많은 기회가 서울(정확히 말하면 수도권)에 있다. 이곳에는 지방에서 꿈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양하고 신선한 문화, 수많은 기업 등의 기회로 이곳에서는 어렴풋이 바라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곳보다 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꿈과 기회의 땅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땅이다. 



그래서 종종 서울에 야속한 마음이 든다. 달콤하게 불러놓고 누구보다 강하게 채찍질한다. 그러나 나는 글밥 먹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외려 언젠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게 되었다. 기깔난 문장을 쓰고, 그 문장으로 사람들 속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그런 작가 말이다. 가끔 떨어지는 꿀이 달콤해 아직은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사실 저번에도 응모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하거나 참신한 얘기를 가진 것도, 대단한 문장을 쓰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공이 부족한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놓을 수 없다. 



지난주 아는 동생을 만났다. 그 애는 독립 영화를 찍으면서 거진 8년간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애다. 

"형, 나 얼마 전에 영화제에 갔다 왔어. 내가 출연한 작품이 있어서 말이야. 거기에 이명세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오셨더라고? 평소 만날 수 없는 분이라 영화 보실 때 뒤에서 숨죽이고 있었는데, 나오면서 나보고 딱 말하더라. '야, 너 연기 잘하더라' 한, 5분 정도 멍하니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배우 생활 1년은 더할 수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속으로 슬며시 대답했다. 다 그런 거 아닐까. 서울생활 누가 돈으로만 버텨. 꿈을 조금씩 현실로 치환해가며 버티는 거지. 그게 돈이든 명성이든 사람이든 뭐든 말이야. 나도 아직 충분히 버틸 만 해. 누가 서울 생활할만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거다. 네, 당분간 할만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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