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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Feb 28. 2023

 아버지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무심코 생각했다


아버지 생신이었다. 케이크를 사 들고 대구로 내려갔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고구마 케이크였다. 아버지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다.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아버지는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며 사버렸다. 고구마 케이크를 드시는 장면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이 상상인지, 오래된 기억인지 긴가민가했다. 아마 맞겠지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둘째 이모네도 와있었다. 외가인 포항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저녁상은 푸짐했다. 어머니가 전을 부치고, 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웠다. 막내 외삼촌이 보낸 청어과메기와 밀치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구마 케이크를 상에 올려두었다. 음식이 참, 제각각으로 좋았다. 초는 긴 걸로 6개, 함께 생일 노래를 불렀다. 생일, 생신, 아버지, 아빠, 남편, 형부 등 제각각 불렀다. 똑같은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축하합니다란 가사만 같았다. 충분했다.


저녁상을 거하게 치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들었다. 어머니는 웬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귀엽다며 자랑했다. 나랑도 닮았다고 했다. 막내 외삼촌의 아이로 이름은 서연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오랜 앨범에서 내 사진과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사촌 동생의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3개의 사진을 나란히 두고 어쩜 이리 똑같냐 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내가 보기에도 비슷했다. 셋 다 이 집안사람으로 보였다. 넓은 이마와 이목구비의 형태가 판에 찍어낸 듯 비슷했다. 


이모들은 막내 외삼촌이 정신 차렸다고 했다. 막내 외삼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닷가 사내 정도였다. 호방하고 술친구가 많았고 꽤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외삼촌은 능력이 꽤 좋은 현장직 노동자였다. 에어컨과 건물 철거가 그의 주 업종이었는데, 일이 많은 여름 한 철에는 달에 2~3천을 번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산이 쌓여있진 않았다. 외삼촌은 사람들에게 항상 술을 샀다. 자신은 가정이 없어서 돈 쓸 곳이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에는 카지노에 가서 3일 만에 3천을 태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바둑을 두기 때문에 도박에 빠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묘하게 납득 가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항상 삼촌은 삼촌의 돈을 어떤 여자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도 가끔 본 적 있었다. 매번 다른 사람이긴 했지만.


그런 외삼촌에게 느닷없이 아기라니. 결혼한 적 없는 외삼촌에게 8개월이 된 아이가, 그것도 딸이 생기다니. 삼촌은 식을 안 올리고 그냥 애를 낳고 산다고 했다. 전후 사정을 들었지만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외삼촌의 삶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외삼촌은 항상 호방하고 유쾌한 웃음을 지었으므로 나는 외삼촌을 좋아했다. 외삼촌이 잘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야기 끝에 복잡한 사정이 결국 잘 해결되었다고 들었으므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이와 외숙모와 함께 지내고 있단다. 외삼촌은 이제 사람들에게 술을 덜 사야겠다고 했다. 이제 돈 쓸 곳이 생겼다고 하면서.


외삼촌의 삶과 서연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외갓집이 떠올랐다. 뒤이어 아쉽다고 생각했다. 외갓집은 항상 북적북적했다고 기억한다. 명절날엔 호방한 웃음을 지으며 매번 피문어를 통째로 가져오는 외삼촌과, 3시간 동안 밥상에서 떠나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드는 이모들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외갓집에 모이지 않는다. 외할아버지께서 올해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7년 전 돌아가셨다. 요새 명절엔 여느 집처럼 각자 시간을 보내는 형국이다. 외할아버지에겐 각자 시간이 날 때 다녀온다. 10년 전에 서연이가 있었다면 엄청 이쁨 받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다.


10년 사이 꽤나 바뀐 삶의 모양을 생각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태어난 서연이, 새로이 삶의 기쁨을 찾은 막내 외삼촌, 그리고 이제 10년짜리 초를 6개 꽂은 아버지의 생일상을 생각했다. 초의 개수가 바뀌어도 아버지는 계속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하실 것이고, 가정의 모양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부재하고 태어나고 모이고 흩어지면서 삶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생일상을 치우면서 서연이가, 외삼촌이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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