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작년 11월, 과장님이 퇴사 계획을 처음 내게 말했던 날을 기억한다. 이듬해 여름에 퇴사할 거라고 했다. 그때는 점심시간이었고 우리는 돈가스와 김치찌개가 세트로 나오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과장님은 돈가스를 먹고 말을 이어갔다.
“찌개는 단데, 돈가스는 괜찮네요. 00 씨, 제가 나가면 과장급 말고 신입으로 2명 뽑아달라고 하십시오. 그게 00 씨한테 훨씬 나을 겁니다. 그래도 선임 역할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맘에 들지 않으면 이사한테도 얼굴 붉혀가며 할 말 다 하는 과장님은 이번에도 선의를 전혀 숨기지 않은 채 조언했다. 시큼하면서도 단 김치찌개와 괜찮은 돈가스를 먹으면서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내가 속한 기자팀은 3+1이다. 팀장-과장-나까지 3이고, 외부 기자가 1이다. 그 외부 기자는 전 직원으로 과장님이 소통하고 있었다. 외부 기자는 곧 그만둘 예정이라고 했다. 아니 그전부터 계속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과장 자신이 퇴사할 때까지만 일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고 한다(둘은 친하다). 과장님은 그의 자리를 탐냈다. 퇴사는 하되 외부 기자로 일하는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과장님은 그때부터 회사에는 신입을 미리 뽑자고, 외부 기자에게는 자신이 나갈 때까지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다. +1이 되기 위한 과장님의 큰 그림이었다.
으레 그렇듯 직원과 회사의 생각은 괴리가 크다. 우리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행히 과장님의 큰 그림은 완성되었다. 그림이 완성되는 동안 6개월이 흘렀다. 외부 기자는 그만두었고, 과장님은 퇴사했다. 나는 그간 과장님 업무를 하나씩 이어받았고, 과장님은 자연스레 +1의 자리로 옮겨갔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3’쪽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거다. 기자팀은 2+1이 되었다. 팀장님이 내외부를 컨트롤 하느라 기사 쓰지 않는 걸 생각하면 내부 기자팀의 실질적인 손은 나 하나였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2+1이 된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일하거나 퇴근할 때 종종 웃음이 났다. 웃으면 속이 뻥 뚫려야 하는데, 웃을수록 답답함만 커졌다.
윗대가ㄹ 아니 윗분들 생각이 있겠지. CEO만의 고충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신입을 뽑지 않은 것도(물론 이제 뽑으려고 공고는 올려두었다), 업무가 늘어났는데 직책과 연봉이 그대로 인 것도, 취재용 카메라가 고장 났는데 다시 사지 않는 것도, 광고비로 받은 현물을 사장님 지인에게 협찬으로 돌리는 것도 모두 그러려니 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팀장님은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한다. 단지 여러 이해가 얽혔을 뿐이었다. 돈을 아껴 회사를 유지하려는 이사님과, 이사님을 설득하면서 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팀장님. 그외 여러 사람의 이해가 얽혀 기형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거기에 내 이해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해하려고 하지마, 그게 중요한 거야.
퇴근하던 도중 문득 이 말을 들은 장면이 떠올랐다. 이 말을 들은 건 군대 시절이었다. 나는 3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일했다. 그중 상당 시간은 후방지역 부대에서 중대장을 맡았다. 위 말을 건넨 사람은 3년 선배인 중대장이었다.
"너가 그 사람을 왜 이해하려고 해?"
신선한 충격이었다. 솔직히 평소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던 선배에게 감명까지 받았다. 선배가 말한 그 사람은 대대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직속상관으로 충성해야 하는 사람. 나는 3년 동안 군인 물이 들어 상관의 의도를 이해하고 발맞추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 당시 상황도 비슷했다. 간부는 없고 기본 업무는 다 해야 하는 상황. 모든 간부가 겸직을 하고 있었고, 나는 3개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원칙주의자이면서 성당을 다녀 상당히 자애로운 대대장님은 용사들과 상급 부대의 요구를 다 맞추려고 했다. 자연히 중간 사람들이 죽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깨어있는 선배 중대장은 그런 조언을 내게 했다. 이해하지 말라고. 그 이후 나는 야근하는 대대장님을 두고 퇴근하게 됐다.
맞다. 나는 그 중요한 원칙을 다시 떠올렸다. 하마터면 이해해버릴 뻔했다. 회사 재정을 걱정해 매일 인스턴트 커피를 타 먹는 이사님을, 애가 3명 있는 팀장님의 야근을, 그들의 삶을 이해할 뻔했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지금은 내 코가 석 자다. 내일 점심에는 팀장님과 돈가스를 먹으면서 말해야겠다. 퇴사하겠다는 나의 이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