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 수육은 무(無) 맛이다

by 신대방 고라니


9년 만에 개복치 수육을 먹었다. 처음 먹은 건 9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포항에서는 집안 대소사에 개복치 수육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 장례식이었다. 그렇게 슬픈 장례식은 아니었다. 95세까지 사셨고,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다들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해둔 상태였다. 그래도 자식에겐 큰 슬픔으로 다가왔나 보다. 어머니와 이모들은 여러 번 우셨고 삼촌은 술을 많이 드셨다.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을 각자의 방법으로 지나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리 슬프진 않았다. 아마 외할아버지와의 긴밀한 추억이 없어서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나는 살면서 장례식장에서 울어본 적 없기도 하다. 정말 친밀한 이의 상실을 아직 경험해본 적도 없고, 감정적으로 둔하기도 해서다. 그래도 외할아버지 앞에 섰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애도를 했다. 영정사진 속 외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하루에 술 한 병 이상을 꼭 드시는 분이라 늘 기분이 좋으셨던 걸까 싶다. 작년 여름 즈음, 지금의 아내와 외할아버지께 처음 인사드리러 갔다. 외할아버지는 아내를 보고는 곱고 참하다며 늘 그렇듯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술도 안 드셨는데 기분이 꽤 좋아 보이셨다. 요양병원이라 면회는 20분 남짓이었다. 아내는 입관할 때 꽤 많이 울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아직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감의 측면에서 말한 건 아니다. 슬픈 일을 잘 공감해줄 수 있어야 성숙하다는 걸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슬픔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는 류의 얘기도 아니다. 그저 내 경험과 감정이 얕다고 말하는 거다. 사실 좀 더 젊었을 때는 나는 내가 성숙한 사람인 줄 알았다. 관조적인 면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지금에서야 오만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 상실의 깊이를 잘 헤아리지 못하겠다.



어릴 적 명절, 외갓집에서 놀 때 가끔 어른들의 옛날 얘기를 주워들었다. 어머니는 첫째인데, 외할아버지가 어머니가 태어난 날에 술을 한껏 드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기분이 좋아서 동네를 몇 바퀴나 계속 돌아다니셨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그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어머니가 결혼한 날에는 돌아와서 동네잔치를 한 번 더 했다고 한다. 개복치 수육과 돔베기 등 잔치 음식도 잔뜩 했다고 들었다. 그때는 또 어떤 기쁨이셨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걸까.



사실 개복치 수육은 맛이 없다. 맛있다 없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無) 맛이다. 초고추장에 찍으면 초고추장 맛이고, 간장에 찍으면 간장 맛이다. 탱글하고 쫄깃한 묵 느낌이다. 이걸 왜 먹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개복치 수육이 왜 맛이 없는지 모르겠고, 무(無) 맛의 물고기가 왜 집안 대소사 상에 올라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나는 자식이 태어났을 때의 기쁨도 모르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언젠간 투명한 개복치의 맛을 담담히 알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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