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저분하고 즐겁게
선언이라니.. 너무 거창한 단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언제나 내 주변은 너저분했다.
물건을 쓰고 절대 있었던 자리에 놓는 법이 없다.
매사 신경 쓰고 노력하는데도
절대 나아지지 않았다.
노력이 과하다 보니 강박증이 되고
신경을 과하게 쓰다 보니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펼쳐져 아무 데나 나뒹구는 인생이 너무 어지러워서
물건을 다 버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정리할 물건이 없으면 되잖아?
불안이 커지면서 만약을 대비하여
종류별로 물건을 구비해놓고 싶었다.
불안과 욕구가 뒤섞인 마음과 싸우며
아끼던 엽서와 사진들, 귀엽고 자잘한 것들
언젠가 쓸 것 같은 색연필.. 종이..
어떤 날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무수한 추억들을
많이도 버렸다.
이동이 많고 내년을 모르는 삶
짐이 많은 건 훌쩍 떠나기에 어렵기도 했으니
버려야만 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삶을 누릴 줄 아는 사람과 산다.
진정 자기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참 많은 것들을 즐긴다.
즐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이 많다.
좋은 악기가 있어야 좋은 음악을 하고,
좋은 가전이 있어야 좋은 요리를 한다.
그 사람 옆에 있으니 마치 내가 가지를 모두 쳐내고
앙상하게 남겨진 겨울나무 같았다.
난 취미랄 것이 없다.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먹고 살 생각만 하는 인간이라니
그의 피아노로 연주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연주하는 걸 좋아하네
하고 생각했다. 진작 작은 건반 하나 들일걸.
그는 내게 좋은 이젤을 구해다 주었다.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보면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자기의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소통이 아니라 표현인데
자기의 것을 표현하려면 나를 알아야 하고
내 가치가 분명해야 하고, 또 순수해야 하고,
모든 감각을 날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을 동경하고,
그의 일을 좋아한다.
입시와 대학과제, 회사일, 판매용 일러스트..
나는 목적이 있는 그림이 아닌 것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릴 줄은 알지만 내 그림은 그릴 줄 모른다.
너무 크고 웅장한 이젤 앞에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린이 미술 수업을 위해 구비해 뒀던
몇 채색 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려본다.
너무 입시그림 같은 그림들,
내가 그린 그림은 하나같이 재미가 없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엔
그림에만 집중을 할 수 있다.
싫증을 잘 내는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림을 그리고 뭔갈 만드는 일이어서
미대에 가기로 결심했었다.
오랜만에 10대 중반, 미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하던
내 마음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그림에 소질은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있는 내가 좋고
그 시간이 좋다면 계속해도 되는 거지.
어린이를 위한 채색도구가 아쉬워서
내친김에 전문가용 물감과 파스텔, 색연필을 샀다.
입시가 끝나고
다시는 그림 도구를 사지 않으려 했는데
또 한 짐을 들이고 말았다.
쉽게 더러워지는 그림 도구를 닦는 일이 스트레스고
이 짐을 들고 또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즐거워질 시간의 가치에 무게를 더 두려고 한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또 어떤 시간엔 피아노를 치고,
그러고 요리를 하고,
내가 머무는 공간을 꾸미고,
쓸데없는 것을 만들고.
그러려면 많은 도구가 필요하겠지.
지난 인생이 쌓여갈수록
지난 시간을 추억할 기록도 늘어가겠지,
그 기록을 보고 즐거울 시간도 늘겠지.
그동안 너무 가성비 좋게 살았다.
10년 된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돈 벌고
8년 된 노트북으로 작업해서 돈 벌고
장비 하나는 좋은 걸로 갖추고 사는 사람을 만나보니
좋은 장비가 주는 안락함이 크고 결과물도 더 좋다.
모든 걸 다 치워버리고 깨끗하게 황폐한 인생보다는
너저분해도 즐거운 인생이 낫지 않을까
뭐 하나 중간 없이 극단적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하루
또 어떤 것을 하면서 내 시간이 즐거워질까
또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을까
그리하여 나는 반미니멀라이프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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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초고, 2025년 7월 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