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섬, 울릉.
제시어: 아침
어슴푸레한 새벽녘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옆집에 사는 아흔 살 할머니가 허리를 숙이고 밭에서 일을 한다. 가지런히 늘어선 옥수수는 키가 어제보다 한 뼘 자랐다. 가끔 이른 아침 눈을 뜨면 휴대폰이 아닌 창문 밖을 먼저 본다. 할머니가 밭일을 하고 있으면 네 시 반쯤 된 것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할머니가 밭에 있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내가 막 일어난 아침이면 가끔 할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차로 옮겨달라는 부탁이다. 할머니의 오전 밭일은 그쯤 끝난다.
우리나라 가장 동쪽에 있는 울릉도와 서울은 15분가량 시차가 있다. 평소엔 체감되지 않지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시차를 느낀다. 안 그래도 해가 일찍 지는데 네온사인 없는 시골 마을에 어둠은 더 짙게 깔린다. 일정한 출퇴근 없는 시골의 삶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살게 된다. 가을부턴 오후 여섯 시면 새카만 밤이란 게 여태 낯설다. 온도가 쌀쌀해지면 오후 여덟 시 반쯤 눈꺼풀이 감긴다. 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 새벽 서너 시, 아직도 아침이 오지 않았다니.
서울에서 다녔던 회사는 10시 출근, 19시 퇴근이었다. 바삐 일하다 정신없이 퇴근했는데 밤이 되어 있을 땐 종종 슬펐다. 그래서 해가 빨리 저무는 계절엔 일을 하다가 잠깐 나가 골목 사이로 사라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계절을 느끼는 건 옷을 살 때뿐, 태풍에도 바람을 거슬러 출근하는 책임감이 필수인 삶. 이 삭막함을 내 일상으로 받아드릴 수 있을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안고 바다를 건너 훌쩍 떠났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커다란 바위다. 험준한 바위섬에선 퇴적과 침식이 계속 이루어진다. 비가 많이 내리면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연약한 지반은 무너진다. 비바람이 세찬 날엔 군에서 외출을 자제하란 메시지가 오고 해안 도로를 통제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불안한 곳에서 어떻게 사냐고 한다. 파도가 높으면 배가 끊기는 섬, 불편하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사는 이곳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할머니 농작물을 집으로 몇 번 옮겨 드렸더니 매 계절 신선 채소와 과일을 한 아름 나눠주신다. 언젠가 또 다른 곳에서 살게 되더라도, 자연스럽고 다정한 이 마을이 오래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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