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주택살이의 슬픔
이번엔 하수관이 말썽을 부린다. 어느 날 변기 물이 시원찮게 내려가더니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정화조까지 비웠는데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제 변기는 잘 내려가는데, 마당에 있는 정화조 덮개 사이로 오수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화조에서 외부로 나가는 관이 막힌 것 같단다. 당장 눈 앞에 떨어진 견적만 해도 삼백만 원이 넘어간다. 어떤 날엔 전기가 나갔고, 또 인터넷 선이 끊어지고, 수돗물이 나오질 않았다. 50년이 되어가는 주택은 다양하게도 속을 썩인다.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내 모든 편리함은 당연한 게 아니라 역경을 수없이 겪어내고 치밀하게 설계한 결과물임을 체감하게 된다. 숨이 턱 막히게 덥던 올여름 한낮, 에어컨을 켜두고 소파에 앉아 평화롭게 초록이 무성한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 순간이 인류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가 아닐까 했다.
미국이 서부 빈 땅을 개척하던 1800년대 중반, <홈스테드 법>이란 것이 시행되었다. 땅을 무상으로 5년을 임대받는 대신 그곳에 살면서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땅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보통 가진 것 없는 빈민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황무지에서 알아서 집을 지어 먹을 것을 구하며 농사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얇은 벽과 잔디로 덮은 움막집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지 못했고, 물이 귀해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전염병이 돌았다. 이웃집과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져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이 오로지 가족끼리 모든 문제를 해내야 했다. 5년이 지나기도 전에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부동산이 너무 비싸서 토지법이 생기기 전 먼저 찜하는 놈이 임자일 때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조상은 뭐하셨는지 매번 생각했다. 다 살펴보면 모든 건 그만한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비행기로 농사를 짓는다는 미국 대농의 조상은 황무지에서 출발했고 세계적인 농업 국가 미국을 만들었다. 세계 일짱조차 불과 150년 전에 그 모양으로 살았는데 현대 사회가 이렇게 편리한 환경을 갖춘 건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인류사를 들여다보면 전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맨날 서로 뺏고 빼앗기고 되찾고 아주 난리다. 인간이 고고하게 철학과 이상을 논하지만 결국 약육강식 본능을 가진 생물일 뿐이다. 지금도 우리와 가까운 러시아는 전쟁하느라 철도고 화폐고 모든 나라 인프라가 엉망이다. 이젠 폴란드까지 침범했고,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와 라트비아도 앞으로 위험할지 모른다. 수고스럽게 만들어놓은 모든 인프라를 파괴하고 원시로 돌아가는 전쟁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편리함은 잠깐 운이 좋은 거다.
포탄을 날리는 폭력만이 전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당장 물이 안 나오고, 통신 해킹으로 재산을 털리는 것도 일종의 전쟁이다. 전기만 잠깐 끊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된다. 한 인간 사회를 파괴하는 건 너무나 쉽다. 이미 편리함에 적응한 나약한 인간은 자연의 변화와 같은 인류의 욕망에서 비롯한 싸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자연과 생물은 유기적으로 지속한다. 생존에서 불리한 종은 자연스레 멸종한다. 아주 천천히 우리는 멸종하는 중이라 볼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 낙관적으로 바라볼 미래가 없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끼리 밥 먹고 사는 소소한 일상이 우선이라도 인간사 흐름을 간과하긴 어렵다. 나도 어떻게든 휩쓸리게 될 일이다. 저만치서 여기저기 소용돌이 치는 허리케인을 바라보면서 욕심이 조금씩 사라진다. 작은 이익과 눈앞에 횡재는 얼마 가지 않을 것을 안다. 내 곁에 평화와 편리야말로 횡재다. 내 탓으로 생긴 손실이든 천재지변같은 사고든 해결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 오만가지 역경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으니 다행이다. 지겹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에 감사하고 햇살 한줄기에도 기분이 좋은 사사로움이 왠지 더 크게 행복하다.
하수관을 뜯어낼 삼백만 원을 만들려면 다시 내 현실로 돌아가 노동해야지. 외딴 섬마을에서 살기 위해선 이 정도 통찰은 응당 할 줄 알아야 한다. 차례대로 무언가 고장날 일 밖에 없고 대게 돈 수백이 우습다. 예견된 불행은 막을 수 없고 그저 내가 누리는 ‘횡재’에 고마워야할 따름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불행은 괜찮다)
(울지말고 말해)